사람이나 생쥐의 초기 신경계 발생과정 중에 활동하는 물질이 당뇨병이나 피부암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한국인 과학자들이 잇달아 내놓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박계원(35) 박사와 포천중문의대 서원희(35) 교수팀은 신경계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분비되는 ‘네트린(Netrin)’이라는 물질이 혈관 생성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 29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연구팀은 당뇨병에 걸린 생쥐 다리의 혈관을 묶어 혈류의 흐름을 막은 다음 네트린을 투여했다. 그 결과 혈액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파괴된 신경세포가 재생됐을 뿐 아니라 새로운 혈관까지 생성됐다.
서 교수는 “네트린은 신경세포가 몸안에서 어느 길로 이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안내자’”라며 “신경과 혈관이 몸에서 비슷한 위치에 분포해 있어 신경계 관련 물질이 혈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 추측돼 오던 것이 실제로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신경과 혈관을 모두 회복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내는 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경계 발생 시기에는 ‘네드나인(Nedd9)’이라는 유전자도 활동한다. 네드나인 역시 신경세포가 체내 어느 곳에 자리 잡을지를 인도하는 또 다른 ‘안내자’.
미국 다나파버암연구소 김민정(35), 백지혜(32) 박사팀은 네드나인이 피부암 전이를 일으키는 작용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냈다. 이 연구 결과는 ‘셀’ 30일자 온라인판에 소개됐다.
연구팀은 흑색종이라는 피부암세포에 네드나인 유전자를 넣고 작동시킨 다음 건강한 생쥐의 어깨 피부에 주입했다. 그 결과 암세포가 뼈나 장기 등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
백 박사는 “피부암은 그 자체로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여러 곳으로 전이될 경우 생명이 위험해진다고 알려져 있다”며 “네드나인을 억제하는 약을 개발하면 전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