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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입력 | 2006-07-01 03:12:00


《동아일보가 독서문화 진작을 위해 펼치고 있는 연중 기획 ‘책 읽는 대한민국’의 2006년 제7부 시리즈 ‘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을 시작합니다. 독서평론가 역사학자 문인 등 각계 30명에게서 추천받은 100여 권의 책 가운데 30권을 선정해 소개합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 교양서 및 역사소설을 위주로 골랐으며 4권 이상으로 구성된 책은 제외했습니다.》

시대를 알기는 어렵다. 같은 시대라 해도 양지쪽 사람은 요순시대로, 음지쪽 사람은 걸주시대로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린 ‘정조대왕능행도’는 18세기 말의 찬란한 조선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한 발자국 돌아서 본 그 시대의 조선은 어둠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대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음지로 몰아내고 죽였으며, 세상으로 나갈 길을 모두 막은, 닫힌 시대였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이 시대의 음지에 살았던 사람들의 절망과 고통에 슬퍼하며, 그들이 마침내 발견한 빛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닫힌 시대, 증오의 시대가 한 인간과 집안, 그리고 사회에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잘 보여 준다”며 “열린 미래를 지향하다 억압당한 우리 역사의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

이 시대에 드리운 가장 큰 어둠 중 하나는 주자학이었다. 여말선초의 주자학은 시대의 아픔에 가장 민감한 사유였다. 그러나 18세기 말의 주자학은 황사영의 말대로 ‘자기와 조금만 다른 행위가 있으면 그것을 천지간의 큰 괴변’으로 보는 폭력적 사유였다. 1801년 신유박해에서 노론 벽파는 천주학을 이유로 남인과 시파들을 모두 죽이거나 유배시켰다. ‘관용’의 결여라는 이 전통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의 고유한 특색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정치는 크게 세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는 정신의 억압이다. ‘여유당(與猶堂)’이라는 정약용의 호는 ‘망설이면서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19세기 조선의 정신적 죽음은 이러한 분위기의 산물이었다.

둘째, 정치적 독점과 차별이다. 노론 집권하에 남인 정약용의 방대한 저술과 개혁안은 한 명의 백성도 구할 수 없었다. 절망한 그는 “알아주는 사람은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이 허락해 주지 않는 것으로 여겨 한 무더기 불 속에 처넣어 태워 버려도 괜찮다”고 말했다.

셋째, 닫힌 사회의 최종 희생자는 백성이었다.

하늘은 왜 정약용을 내고 그를 버렸을까? 선의에도 불구하고 앞날의 성패를 알 수 없을 때를 위해 ‘주역’이 지어졌다는 정약용의 이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외로운 홀몸이 되어 이 몸과 서서 이야기할 자도 없게 되자’ 비로소 학문의 참뜻을 찾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영혼을 영원한 역사 속에 부활시켰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

김영수 국민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