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네 살의 철학/이케다 아키코 지음·김경옥 옮김/239쪽·9000원·민들레
가치 있는 분야에는 저마다 특유의 기본기가 필요하다. 기본을 쌓지 않고 습득한 기술은 잔재주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에 쌓은 기본기가 운동선수의 평생 자산이듯, 정신이 굳기 전에 익힌 사고력도 마음의 든든한 바탕이다.
이 책은 십대를 위한 철학 자습서이다. 그러나 시험에 대비하는 단기 목적용 참고서는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사유하는 나’를 만드는 토목 공사에 가깝다. 열네 살과 열일곱 살들을 사유의 깊은 바다로 끌어내는 친구 같은 철학 선생님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십대들을 자극한다. “너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걸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렇지 않으면 참 시시하다고 생각하니?” 저자는 ‘멋져’파와 ‘시시’파의 반응으로부터 ‘산다는 것’을 파고든다. 삶에서 출발하여 죽음, 자유, 규칙, 운명으로 종횡무진 사유가 이어지는 식이다.
자유로운 사고 실험은 도발적인 질문 속에서 구체화된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걸까? 어차피 죽을 텐데도 열심히 살아야 할까? 시간은 보이지도 않는데 정말 흘러가는 걸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되짚어 보면 선뜻 대답하기가 막막하다. 질문은 우리의 통념을 흔들어 사유의 기초를 다지게 한다.
정답 없는 질문이지만, 철학적 탐구는 지식 전체를 되새기게 한다. ‘나와 타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고, ‘개인과 사회’는 산과 나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규칙과 자유, 이상과 현실, 우연과 필연, 진짜와 가짜를 살피다 보면 종국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검토하게 된다.
대립되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도 체계적 사유를 도와준다. 답변과 질문으로 이어지다 보면 주제의 안과 밖이 모두 드러난다. ‘나’에 대해 따져 보자. 나는 과연 이름일까, 몸일까, 뇌일까, 정신일까? 철학적 복합 주제를 다루면서도 열네 살에 맞게 전문 용어가 거의 없다. 십대의 고민들이 세밀한 투시도처럼 펼쳐지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교과 간의 벽을 넘어 지식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통합교과적 사고이다. 그런데 사고는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국어 사회 과학 등의 교과 지식을 ‘자신과 대화하는 앎’으로 변화시켜야 통합될 수 있다. ‘나의 생각’을 사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술의 기본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