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투경찰들이 시위 진압 복장으로 지난달 21일 잉글랜드-스웨덴전이 끝난 뒤 쾰른 시내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광장의 하루는 부산하다.
30일 독일 쾰른 대성당 앞 광장. 이날도 어김없이 수많은 관광객과 월드컵 응원 인파가 물결을 이뤘다. 그 속에서 중국계 기(氣) 수련단체인 파룬궁(法輪功)의 회원들이 모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자주 보이는 이들은 중국 내의 파룬궁 탄압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 주는 한편 한쪽에서는 작은 쇠창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자신들의 처지가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주일에 5일 동안 광장으로 ‘출근’한다.
쾰른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이 같은 정치 집회가 부쩍 늘어난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16강전이 열리던 날 수많은 정치 집회가 ‘장외 월드컵’을 벌였다.
한쪽에서는 이란의 반정부단체, 다른 한쪽에서는 터키계 사람들이 자국 내의 인권 보장과 고문 근절을 호소하고 있었다. 독일공산당(DKP)은 광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채 “정부는 병들었다”며 반정부 시위를 했다. 독일에는 최근 불경기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거지 복장을 한 친구와 시위에 참가한 에치피 피셔(39) 씨는 “정부가 배고픔을 축구로 달래려 한다”며 월드컵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른 쪽에서는 반핵단체가 미국의 핵무기 포기를 외쳤다.
그 바로 옆에서는 술에 취한 잉글랜드 팬들이 웃통을 벗은 채 집단으로 광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 곁에서는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출동한 독일 경찰이 잉글랜드 팬들을 빙 둘러싼 채 감시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국기를 든 독일 팬, 잉글랜드 팬들이 경쟁하듯 응원 구호를 외치고 다닌다. 광장 뒤쪽에서는 월드컵 열기를 고조시키는 ‘팬 페스트’가 열리고 있다. 광장은 달아올랐다.
월드컵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틈을 타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월드컵의 이 같은 힘을 빌려 ‘반(反)인종주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스포츠는 좋은 효과를 내면서 인권을 위한 싸움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축구 외에도 다양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쾰른=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