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도쿄 도시마 구 교코초등학교 3학년 1반 학생들이 점심 배식을 받고 있다. 모든 공정은 ‘학교 급식 위생관리 기준’에 따라 이뤄지고 꼼꼼하게 기록된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지난달 29일 오전 11시경 도쿄(東京) 도시마(豊島) 구의 교코(仰高)초등학교 내 주방 앞.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본 주방 안에서는 조리사 6명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양사 사카이 리에코(酒井利惠子) 씨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져 있었다.
주방은 외부인 출입금지. 학교 측이 10cm 정도 열어준 문 밖에서 몇 초 만에 사진을 찍었다.
이날 메뉴는 쇠고기와 야채를 넣어 비빈 냉우동과 튀김만두, 우유와 사과.
문부과학성의 ‘학교급식위생관리의 기준’에 따르면 음식은 조리를 시작해서 학생들이 먹을 때까지 2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300여 명분의 조리를 2시간 안에 마치는 것은 말 그대로 전쟁. 모든 공정은 일일이 지침에 따라 이뤄지고 이는 꼼꼼히 기록된다.
사카이 씨는 “기록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기록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즉각 몇 시 몇 분에 어디서 어디로 옮겨진 식품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
조리를 마친 급식은 가장 먼저 교장실로 배달된다. 매일 ‘목숨을 걸고(?)’ 시식한다는 오바타 히데오(小幡秀生) 교장은 “방학 때면 급식을 못 먹게 돼 섭섭하다”며 웃는다.
교장의 ‘OK 사인’이 떨어지면 각 학급에서 배식이 시작된다.
같은 시간 주방에서는 식재료와 조리된 음식의 샘플들을 영하 20도로 냉동 보관한다. 보관은 2주일간 하게 돼 있다. 식중독 등 문제가 생겼을 경우의 원인 규명을 위해서다.
‘영양사들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학교급식 위생관리 기준’은 무려 책 한 권 분량. 식자재의 보관방법부터 조리방법, 위생관리, 주방의 동선까지 세세하게 지정해 놓고 있다.
가령 조리사는 요리 시작 전에 매일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기록을 남겨야 하며 평소에도 노로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높은 굴 등 어패류를 먹어서는 안 된다. 가족 중에 설사를 하거나 감염성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어도 보고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지침이 철저히 지켜진다는 점이다. “지키지 않는 규정은 의미가 없다”고 사카이 씨는 말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급식은 위생관리 차원을 넘어 질과 교육의 문제로 넘어간 듯하다.
급식에 관한 한 학교별로 배치된 영양사들의 권한이 크다. 식자재 구입부터 메뉴 선정, 조리과정 관리를 담당하며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서 파견돼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영양사들은 학년별로 연 3시간 정도 영양소와 올바른 식생활에 대해 수업을 하기도 한다.
영양사들끼리 월례연구회를 열어 메뉴와 식자재 구입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이렇게 해서 선정되는 메뉴는 음식간의 조화를 고려하고 계절식이나 국가별, 계절별 주제에 따라 짜이기도 한다. 월드컵 기간이면 대전 상대국의 요리가 메뉴로 등장하고 비빔밥에는 미역국과 겉절이와 푸딩이, 스파게티에는 야채샐러드와 멜론이 따라 나오는 식이다.
학교는 매년 학부모들을 초청해 급식 시식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구한다.
식자재 구입에는 학교 당국과 학부모회의 의견도 반영된다. 호시노 미요코(星野美代子) 도시마 구청 보건급식계장은 “학부모회와의 합의에 따라 좀 비싸더라도 유기농산물만 구입하는 학교도 있고, 아이들의 편식 습관을 고치기 위해 교정에서 직접 야채를 길러 급식에 이용하는 학교도 있다”고 말했다.
급식 시간은 각국의 문화와 식사예절을 익히는 시간이기도 한다. 일본식이면 밥은 접시가 아닌 차완(茶碗)에 담고 젓가락으로 먹게 한다. 과거 숟가락 겸 포크를 사용했으나 제대로 된 식습관을 교육한다는 뜻에서 메뉴에 맞는 포크 젓가락 숟가락 등으로 바꾸었다.
이날 학생들이 사용한 식기는 한국에서 많이 쓰는 알루미늄 식판도, 플라스틱 그릇도 아닌 도자기류.
다구치 스미에(田口すみ江) 부교장은 “도자기는 깨지기 쉬워 취급이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소중하게 다루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급식을 통해 편향되기 쉬운 식습관을 고치고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의 급식시스템은:
1956년 학교급식법 제정 이래 일본의 초중학교 대부분이 직영을 기본으로 한 급식제도를 도입해 왔다. 이 중에서도 초등학교는 대부분 학교 직영이다. 다만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는 몇 개 학교가 공동조리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거나 이웃한 학교들끼리 서로 오가며 조리시설을 이용한다. 교코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 부담은 한 달 4000엔(약 3만2000원)대로 한 끼에 230∼270엔(약 1840∼2160원)꼴. 식자재는 부모가, 조리실 운영비는 지자체가 보조해 주므로 실제 비용은 조금 더 추가된다. 보조비는 지자체마다 기준이 다른데, 도쿄 도의 경우 주방에서 사용되는 물과 가스비, 전기료, 조리사들의 인건비 등을 부담해 준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초등학교(고학년) 학부모 부담금 평균액이 239.9엔, 보조금을 합치면 252.22엔 선이 된다.
▼초-중학교 급식 학교장이 직접 관리▼
국회는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0일 본회의를 열어 학교급식법 개정안, 고등교육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제주특별자치도 관련 경찰법 개정안, 학교용지특례법 개정안 등 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또 김능환 박일환 안대희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 후보자 5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각각 가결했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학교장이 학교급식을 직접 관리·운영토록 규정하고 있다. 위탁급식을 하려면 미리 관할교육청의 승인을 얻도록 해 초중학교의 직영급식을 사실상 의무화했다.
의무교육 과정이 아닌 고등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위탁 운영할 수 있도록 했으나 식재료의 선정과 구매·검수만큼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탁할 수 없도록 했다.
또 모든 학교에는 기존의 영양교사는 물론 국가가 인정하는 조리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학교장과 급식 관련 업무 교직원, 급식 공급업자에 대한 벌칙 규정도 신설됐다. 원산지 또는 축산물 등급 표시 등을 거짓으로 기재한 사실이 적발되면 급식 공급업자는 최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급식사고 원인 끝내 못밝혀… 영구미제 가능성▼
보건당국이 사상 최악의 급식사고의 원인물질 규명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이번 급식사고는 영구미제 식중독 사고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급식사고의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본부는 CJ푸드시스템 협력업체의 식재료 및 세척에 사용된 지하수를 수거해 역학조사를 벌였지만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했다.
이에 앞서 CJ가 지난달 21일 지하수를 채취해 자체 실시한 검사에서는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 CJ는 그 사실을 25일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했다. 그러나 본부는 “CJ가 채취한 분량이 4L로 적고, 객관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으로 본부는 학생들이 먹은 음식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식중독을 매개한 음식을 파악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추정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급식사고는 사실상 영구미제 사고로 남게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고의 책임소재도 가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원인물질이 밝혀지지 않으면 CJ푸드시스템과 식재료 납품업소에 대해 법적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된다.
이에 대해 CJ그룹은 “법적 책임을 떠나 이번 사고에 연루된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겠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룹 전체의 식품 사업에 대한 철학과 방향을 재정립하고 식품 위생 및 안전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CJ그룹 관계자는 자체 검사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된 것과 관련해 “우리가 검사한 지하수와 질병관리본부가 검사한 지하수가 채취 시점이 달라 물의 성분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며 “자체 조사 결과는 공인된 내용이 아니므로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급식사고 학교 식당서 또 식중독▼
지난달 14일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 경기 동두천시 동두천여중과 같은 식당을 사용하고 있는 동두천정보산업고에서 식중독 의심환자 28명이 발생했다.
이 학교는 동두천여중에서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급식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가 유사한 사고가 다시 터져 학교 당국의 허술한 급식 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30일 경기도 제2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부터 학생 28명이 복통과 설사 등 식중독 증세를 보여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학생들은 지난달 28일 점심 식사 때 황태조림, 배추김치 등을 먹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학교 학생들에게는 별다른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삼성에버랜드로부터 식자재를 공급받아 조리하는 조리업체 ‘우주’가 급식을 맡고 있다.
동두천정보산업고와 같은 학교 재단 산하 학교인 동두천여중 학생과 교사 84명은 지난달 14일 식중독 증상을 보였으나 학교 측이 23일에야 보건당국에 뒤늦게 신고해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경기도 제2교육청은 30일 급식 중단 조치를 내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동두천=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