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 있는 정보통신부 빌딩 11층 통신위원회 심판정.
정통부 통신위가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회사들의 불법보조금 지급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을 매기기 위해 열린 자리였다.
SK텔레콤 영업담당 임원인 K 상무가 7명의 통신위원 앞에 섰다. 과징금 최종 결정에 앞서 업계의 소명을 듣는 최후진술을 하기 위해서다.
K 상무는 먼저 “영업 현장은 전쟁터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시장 안정을 위해 먼저 나서면 고객들이 빠져나가는 게 한눈에 보입니다. 한번 이탈한 고객을 다시 붙잡으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SK텔레콤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돼 같은 규모의 불법보조금을 주더라도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은 과징금을 얻어맞도록 돼 있다. 통신위는 이통사들의 고객 빼앗기 경쟁이 치열해지자 5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 영업 현장의 보조금 지급 실태를 조사했다.
그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이유로 경쟁회사의 불법에 대해 인내하고 참으라는 것은 마치 남한이 한강이나 대전까지 밀린 상황에서 그대로 휴전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휴전을 결심하는 즉시 초단기에 더 많은 지역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 상무는 또 “보조금 3만∼4만 원을 더 주면 불법이 아니고 5만∼6만 원을 주면 불법인지 아닌지 구분이 모호하다”며 “모든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똑같은 가격에 팔라는 것은 시장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고 항변했다.
예컨대 220만 원짜리 31인치 LCD TV가 직영점에서는 10%까지 할인돼 팔리고 양판점에서는 30만 원까지 깎아주는가 하면 인터넷에선 2, 3일 뒤 인도(引渡) 조건으로 150만 원에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휴대전화만 정가로 팔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차별적인 규제라는 것.
그는 “경쟁이 치열한 용산전자상가나 테크노마트에 대해 동네 대리점 가격과 똑같은 가격으로 휴대전화를 팔라는 것은 대형 집단상가의 영업 메커니즘을 무시한 논리”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과학적이지 못한 통신위의 조사 기법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기존 가입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바꾸는 사람(기기 변경)에 대해 보조금을 줬다고 과징금을 186억 원이나 때리는 것은 억울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K 상무는 마지막으로 시장 모니터링 제도 개선과 과학적 시장조사 기법 도입 및 기존 규제정책의 변경 등을 통신위에 건의했다.
그러나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통신위는 이날 SK텔레콤에 대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 총 426억 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