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중남미 도시가 그렇듯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빈부격차는 극과 극이다.
대통령선거 당일인 2일 낮 이 도시의 대표적 부촌인 산타페 지역의 ‘철의 궁궐’이란 백화점을 찾았다. 한국의 백화점 명품관을 떠올리게 하는 고급 백화점 4개가 축구장보다 넓은 용지 위에 들어선 곳이다.
‘빈자(貧者) 우선’을 내세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민주혁명당 후보의 포퓰리즘이 맹위를 떨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극화가 치유 불가능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지만 부유층은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쇼핑객들은 좌파 대통령 탄생 가능성을 한목소리로 걱정했다. 하지만 상위 10%가 국부의 80%를 차지한 현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딸의 사립학교 졸업 파티를 위해 130달러를 주고 드레스를 산 건축가 에밀리오(43) 씨는 “오브라도르 후보는 책임지지 못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회계사인 알렉산드르 부르고스(47) 씨는 기자가 “코카콜라 사장 출신인 비센테 폭스 대통령의 경제 성적이 실망스럽지 않으냐”고 하자 “의회 다수당이 개혁법안 통과를 저지해 그렇게 됐다”며 그를 옹호했다.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반목이 극심하지만 ‘가진 자’가 솔선해 공동체 의식을 발휘해야 한다는 정서는 멕시코의 상류층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세계 3대 부호인 카를로스 슬림(66) 회장이 지난해 말 “4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레바논계인 그는 멕시코의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사업을 독점하고 담배, 정유, 유통까지 장악한 기업가다.
슬림 회장은 기부 계획과 함께 ‘차풀테펙 합의’라는 것을 내놓았다. 지식인과 정치인, 기업인 등 4000명이 서명한 이 협약은 병원과 교육에 거액을 투자해 멕시코의 미래를 연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 중심에 슬림 회장의 돈이 있었다.
몇몇 쇼핑객들은 “슬림 회장은 좌파 대통령이 출현하는 사태를 걱정해 공포심에서 돈을 냈을 것”이라며 좌파 세력의 득세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무역상인 프란시스코 리베라(50) 씨는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그의 진심을 믿는다”며 “새로운 멕시코의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