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정책의 상징인 신문법은 당연한 권리로 누려온 언론의 자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입법 목적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여론 독과점 해소. 신문의 사회적 책임(4조)과 공정성을 의무화한 조항(5조),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17조), 신문발전위원회(27조)와 기금의 설치(33조), 신문유통원 설립(37조) 등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조항들이다.
이 같은 조항을 통해 신문법이 던지는 물음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 둘째, 정부가 신문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언론의 자유란 도구적 존재인가.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신문법 위헌 소송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대부분의 조항에 대해 “추상적 선언적 규정일 뿐이다”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 또는 직접성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헌법적 가치인 언론 자유에 대한 핵심적 질문을 비켜갔다.
○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나
신문법은 모든 신문에 일률적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균형 있게 수렴할 것과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언론학자 데니스 매퀘일 암스테르담대 명예교수는 “법과 규제를 통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려는 방법은 언론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고 법과 규제가 시대에 뒤떨어졌을 때 개편하거나 폐지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기본 원칙 중 하나로 언론 자유 우선의 원칙을 꼽았다. 사회적 책임을 묻는 어떠한 제도도 언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으며 그러한 경우 언론은 책임을 거부하고 자유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언론이 그 행위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법적 책임을 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논조(論調)를 띠는, 대표적인 경향(傾向)기업인 신문에 다양한 의견을 공정하게 보도하라고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신문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치 지도자도 못하는 일을 개별 신문사에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라는 반문(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교수)처럼 이는 언론에 능력 밖의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부닥친다. 신문의 종류나 사회적 영향력의 크고 작음을 묻지 않고 모든 언론에 일괄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는 신문법 조항을 문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공론의 장은 어느 한 신문이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학자 허버트 갠스 씨와 제임스 커런 씨는 지면이나 시간관계상 다양한 시각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언론사 규모에 따라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제안했다.
○ 정부가 신문시장에 개입할 수 있나
정부의 시장 개입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 실패 상황에서 정당화된다. 그러나 입법자의 주장과 달리 현재의 한국 신문 시장은 효율적인 경쟁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의 주장이다. 헌재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 조항과 신문사의 복수 소유 금지 조항(제15조)에 대해 각각 위헌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신문 시장 실패라는 입법자의 논리를 배제했다.
그러나 헌재는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 설립 조항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정부의 시장 개입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
정부는 여론 형성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개입을 하더라도 언론 산업 전반을 돕는 것이어야지 기금 수혜 대상을 정부가 임의로 선정하는 것은 여론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정부의 중립성 원칙이 지켜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문발전위를 문화관광부에 설치하고, 위원 3분의 1을 문화관광부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로는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지 못한다.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신문 배달을 책임지겠다는 신문 유통원도 문화부 장관이 유통원장을 임명하고 유통원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데다 문화부 문화미디어국장이 당연직 이사까지 맡아 정부가 여론 시장에 개입할 우려가 크다.
○ 언론의 자유는 도구일 뿐인가
신문법에 따르면 언론의 자유는 여론의 다양성과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4조). 그러나 언론학자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존엄할 수 있으므로 언론 자유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권리이지 도구적 권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매퀘일 교수는 “언론 자유는 인권과 같은 본질적 원리이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장치는 언론 자유 신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임상원 고려대 언론학부 명예교수에 따르면 신문법은 언론의 자유가 공적 과업, 즉 민주주의 여론 형성, 사회 발전과 같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적극적 자유라는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는 자유가 성취해야 하는 공적 과업이 무엇이며 누가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 때문에 “적극적 자유는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를 낳을 수 있다”며 “언론의 자유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소극적 자유가 그 기본이고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소극적 자유 없이 적극적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