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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팬들이 만든 ‘알렉세이 투르코’ 내한공연 15일 열려

입력 | 2006-07-05 03:03:00

6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내한 공연 중 ‘후즈후’에 출연한 알렉세이 투르코.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지난달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내한 공연 후 팬들과 만난 알렉세이 투르코. 사진 제공 엔젤


《‘300명만을 위한 단 한번의 특별한 공연에 초대합니다.’

발레 팬들의, 발레 팬들을 위한, 그리고 발레 팬들에 의한 ‘특별한’ 발레 공연 한 편이 서울 정동극장 무대에 오른다. 15일 오후 4시 단 한차례 공연되는 ‘알렉세이 투르코 발레 클래스 콘서트&갈라’(1588-7890). 지난달 내한공연을 펼쳤던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솔리스트 알렉세이 투르코를 초청해 열리는 무대다. 이 공연이 ‘특별한’ 까닭은 공연기획사가 아닌 순수한 발레 팬들이 무용수 초청부터, 비자 문제, 극장 대관, 팸플릿 인쇄까지 직접 맡아 성사시킨 공연이기 때문이다.

투르코 역시 한국의 발레 팬들이 자신의 춤을 다시 보고 싶어 십시일반으로 초청공연을 기획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개런티를 평소의 절반 정도로 ‘자진 삭감’했다.》

○ 발레를 사랑하는 15명의 ‘엔젤’

공연을 성사시킨 발레 팬들은 15명. 이번 공연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박유림(30) 씨와 그를 돕는 14명의 후원 멤버 모임인 ‘엔젤’이다.

발레 전공자로 경기 성남시에서 어린이 발레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 씨만이 ‘발레’와 연관된 직업을 갖고 있을 뿐 나머지 14명은 모두 발레를 전공하지 않은 마니아들이다. 직업도 박물관 직원부터 학생, 디자이너, 회사원 등인 20대 초반∼30대 여성들.

“지난달 초 에이프만 발레단 내한 공연 팬 모임에서 처음 서로를 알게 됐어요. 투르코가 에이프만 발레단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한국에서 그의 공연을 다시 볼 기회가 있을까 아쉬워하다가 아예 우리가 직접 초청해 보자는 데까지 발전했죠.”(박 씨)

이들이 모임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연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23일. 알음알음으로 만난 러시아 출신 무용수를 통해 투르코와 연락이 닿았고 “7월 초에 스케줄이 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 냈다. 막막하긴 했지만 무조건 부딪쳐 보기로 하고, 일단 비자문제 해결을 위해 수십 번씩 모스크바에 있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사관에 국제전화를 걸었다. 항공편 예약과 대관이 가능한 공연장 섭외도 동시에 추진했다. 사무실이 따로 없으니 카페에서 회의하고, 주로 e메일과 인터넷 메신저 등으로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1200만 원에 가까운 공연비용도 문제였다. 일단 ‘엔젤’들이 30만 원씩 갹출해 420만 원을 모아 개런티와 항공료는 해결했다. 나머지는 박 씨가 사비를 털어 먼저 충당한 뒤 공연 티켓 판매로 메울 생각. 그러나 전석이 매진된다 해도 100만 원 정도의 적자 공연이 예상된다.

14명의 ‘엔젤’ 중 한 명인 이지영 씨(29·충남대 대학원 재학)는 “2주일이 채 안되는 기간에 우리 힘으로 세계적인 발레스타의 공연을 유치해 냈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 새로운 팬덤 문화

투르코는 공연 6일 전인 9일 미리 입국한다. ‘엔젤’들은 매일 몇 명씩 조를 짜서 그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며 찜질방, 한복점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여 줄 계획이다.

이번 공연에서 투르코는 ‘돈키호테’ 등 일반 발레 작품 외에도 관객들이 볼 수 없는 평상시의 클래스(무용수들이 매일 하는 연습) 장면을 무대에서 보여 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용수의 ‘무대 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인 셈이다.

팬들의 투르코 공연 유치는 진화하고 있는 ‘팬덤’ 문화의 한 사례다. 무용칼럼니스트 유형종 씨는 “이번 공연은 소수 관객을 위해 마니아들이 직접 마련한 일종의 ‘맞춤 공연’”이라며 “팬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문화소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스스로 생산하면서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단계까지 이른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