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박정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부인 이범준 전 성신여대 교수. 사진 제공 이범준씨
“남편은 억울하게 장관직에서 떠난 지 1년 반 만에 대장암 선고를 받았어요. 그가 세상을 등진 뒤 유품으로 남긴 방대한 파일과 자료, 메모들을 뒤지고 여러 명의 당시 외교관들을 만났어요.”
이범준(73) 전 성신여대 교수가 2003년 작고한 남편 박정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한평생을 회고한 ‘함께 못 다 부른 노래’(경제풍월 발행)를 냈다.
“남편은 생전에 ‘회고록은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남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내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한-러 외교 분쟁의 진실이나, 선거를 치르면서 느낀 정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학자의 입장에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러 외교분쟁은 1998년 7월 초 주러 한국대사관의 참사관(국가정보원 파견)이 러시아 외교부 간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 추방되면서 빚어졌다. 이에 한국정부가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참사관을 맞추방하는 강수를 둠으로써 심각한 외교분쟁으로 번졌다. 박 장관은 이 사건으로 취임 5개월 만에 물러났다.
“당시 외교부 간부들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관 추방 결정 과정에서 외교부의 입장은 전혀 반영이 안 됐어요. 부처 간의 협의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거죠.” 박정수-이범준 부부는 1965년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함께 학위를 받은 국내 ‘부부 정치학 박사 1호’다.
이기홍 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