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72년 정부 ‘북괴 대신 북한’호칭

입력 | 2006-07-05 03:03:00


괴뢰(傀儡).

나무나 흙으로 만든 인형, 꼭두각시, 허수아비.

어느 시(詩) 구절을 따오면 ‘남과 북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괴뢰에 지나지 않았다’.

북은 대한민국을 ‘남조선 괴뢰’라고 불렀고, 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북괴’라고 호칭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이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1971년 초 일본 정부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인사들의 방북을 허가하면서 그들의 여권 목적지란에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라고 표기했다.

당시 한국 외무부가 발끈했다. 북괴 지역의 명칭으로 DPRK를 사용한 것에 대해 일본 측에 엄중 항의하고 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1972년 7월 4일.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이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그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남북 간에 합의했다”며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였다.

“공동성명에서 남북 쌍방은 상호 중상비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앞으로 북괴라는 용어와 김일성(金日成)이란 호칭은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가.”(기자)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서로 욕하고 하는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비극이다. 북한 괴뢰니 하는 용어도 뭔가 다른 좋은 표현으로 바꿔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이후락)

다음 날인 7월 5일.

문화공보부는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의 공보관 회의에서 “종래의 북괴를 북한으로 호칭하고 김일성과 그 체제에 대한 중상비방을 삼가라”는 공보지침을 시달했다.

그러나 북괴란 용어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는’ 시 같은 삶이 한반도에서는 시기상조였다. ‘북괴’는 남북 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면 나타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사라지는 신출귀몰한 ‘인생’을 살았다.

그랬던 북괴가 공식석상에서 확실히 종적을 감춘 것은 2000년 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이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에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동아일보 사설에 담긴 호소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대평화의 시대가 하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성급하지 말고 들뜨지 말고 서둘지 말고 초조하지 말자. 냉철한 이성과 꾸준한 인내로 민족 대평화의 시대를 맞자.”(1972년 7월 5일자 3면)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