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마련한 학제개편은 그동안 학과 중심의 대학운영 체제를 학생과 학문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번 연구안은 현실적인 제약은 배제한 것이어서 실제 도입 과정에서 다소 달라질 수 있으나 대학의 학생선발이나 교육방식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학부제 서울대 어떻게 바뀌나=현행 16개 단과대와 단과대 내의 62개 학과 및 22개 학부가 19개 학부로 재편된다.
신입생 모집단위도 16개 단과대에서 인문사회, 이공계, 음악, 미술 등 4개 분야로 단순화된다. 인문사회 분야는 어문학부 철학부 역사학부 정경학부 사회학부 행정학부 경영학부 교육학부 등 8개 학부를 포함한다.
이공계 분야는 건강과학부 물리과학부 지구우주과학부 생명과학부 공간환경학부 정보통신공학부 에너지공학부 시스템공학부 신소재공학부 등 9개 학부가 있다. 음악학부와 미술학부는 각각 하나의 모집단위가 된다.
법학 약학 수의과학 의학 치의학 등 6개 학문은 학부 2년 또는 4년 과정을 마친 학생이 전문대학원에서 전공하는 체제로 바뀐다.
학부제가 되면 1학년 때는 학부 내에서 다양한 교양 학문을 배운 뒤 2학년 때부터 자신이 선택한 전공 트랙(track)에 따라 강의를 듣게 된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행 사범대에 해당하는 교육학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국어교사가 되길 희망하면 ‘교사론’ ‘교육철학’ 등 교직과목은 교육학부에서 배우고 문장론 문법 등 국어학에 필요한 강의는 어문학부에서 골라 들으면 된다.
따라서 대학 입학 때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내에서 전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 확보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학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서울대는 보고 있다.
학제 연구에 참여한 이무하(농생명공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너무 단과대 위주로 운영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앞으로는 학생들을 얼마나 잘 가르칠 것인가 하는 학문적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체계가 대학-단과대-학과에서 대학-학부로 단순화돼 그만큼 학내 의사결정도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학부제 왜 도입하나=서울대가 학제 전반을 학부제로 개편하려는 것은 학생 중심의 통합적 교육체제를 갖추고 유망 학문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역할분담을 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법학 의학 경영 분야에 전문대학원 체제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 이제 한국도 미국의 하버드대 등 유명 대학처럼 학부에서 폭넓은 교양교육을 받은 뒤 본격적인 학문 연구는 대학원에서 하는 체제가 마련되는 것이다.
대학들은 흥미 적성 목적보다는 학생의 성적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관행을 지양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학과 간의 벽을 없애고 전과나 복수전공 기회 확대 등을 통해 학업선택 기회를 대폭 확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학 1, 2학년 때 공부를 많이 해야 다양한 학문을 전공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대학은 고등교육 수요에 힘입어 양적 팽창과 무분별한 학과 증설 경쟁에 치중했다. 실제 1994년 당시 전국 대학에 설치된 학과가 557개에 이른다. 이제는 대학 신입생이 줄어들고 있으며 대학은 교육의 질을 높이지 않고서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체 국내 인구 중 학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4.2%인 1138만3000명이었으나 2030년이 되면 14.1%인 708만 명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고교 졸업자 수로 보면 △2009년 56만9000여 명 △2013년 62만9000여 명 △2018년 53만9000여 명 △2020년 48만7000여 명 △2021년 43만3000여 명 등으로 대학 입학 자원이 계속 줄어든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등교육시장 개방 압력이 심해져 국내외 대학 간의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 교육의 질적 향상이 시급한 실정이다.
교육부는 1998년부터 학부제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모든 대학이 학부제를 도입했지만 모양만 학부제 형태를 갖춘 데다 전공 영역이 좁아질 것을 우려한 교수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성균관대 손동현(철학) 교수는 “정부는 재정지원을 매개로 한 상향식 구조개혁보다는 대학 실정에 맞게 자체적인 학부제를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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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