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차마 떠나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라운드와 객석에 머물렀다.
5일 독일과 이탈리아의 2006 독일 월드컵 4강전이 열린 도르트문트 베스트팔렌슈타디온.
독일의 탈락이 확정되는 순간 주장 미하엘 발라크는 운동장에 주저앉아 한참을 있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그 바로 앞에 앉은 다비트 오동코어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통곡했다. 여기저기 주저앉거나 쓰러져 누운 선수들이 일어설 줄을 모르자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감독이 오히려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 선수들을 달랬다.
이 선수 저 선수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달래며 한참을 보낸 뒤에야 선수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아주 천천히 돌며 독일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독일 팬들은 경기 도중보다 더 많은 국기를 일제히 꺼내 흔들며 ‘그대, 결코 혼자 걷지는 않으리…’라는 비장하면서도 장중한 노래로 선수들을 위로했다.
독일 전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개최국 독일이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독일 언론과 팬들은 당초 독일이 8강 문턱에 가기도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필리프 람과 루카스 포돌스키 등 신예와 미하엘 발라크 등 노장이 조화된 독일은 힘과 조직력을 함께 과시하며 선전해 독일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인 독일 국민들은 그동안 애국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려 왔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만큼은 비정치적인 스포츠행사라는 기회를 이용해 마음껏 열기를 발산했다. 독일 통일 이후 처음 자국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은 마음껏 국민 단합의 기회를 가졌다.
한국에서 ‘수입’한 길거리 응원이 열기를 고조시켰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월드컵 대회조직위원장이 직접 나서 ‘친절 캠페인’을 벌였고 ‘에이즈 퇴치 운동’ ‘인종주의 반대’ ‘제3세계 어린이 돕기’ 등 각종 평화 운동을 함께 펼치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의 이미지 제고에 힘썼다. 이 같은 분위기의 구심점이 됐던 독일대표팀을 팬들은 기립한 채 노래로 위로했다.
아쉽게 결승 진출이 좌절됐지만 독일 팬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반응했다.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동안 술에 취하거나 큰소리를 내는 이는 아주 적었고 이탈리아 팬들의 열광을 담담히 지켜봤다. 한편 기차마다 초만원이었고 모든 교통편이 일제히 연착됐다. 지친 팬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기차 복도에 앉거나 드러누웠지만 끈기 있게 참아 냈다.
도르트문트=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