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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

입력 | 2006-07-07 03:08:00

1편보다 완숙한 퓨전 테크닉을 보여 주는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 사진 제공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동화에나 나올 법한 16세기 해적을 21세기판으로 재창조한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는 2003년 개봉돼 6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미국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당시 이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여름 대작 중 가장 실패 가능성이 높은 영화였다”고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작 해적영화 ‘컷스로트 아일랜드’가 참패를 한 데다 ‘캐리비안…’ 출연 배우들의 흡인력도 미지수였다. 조니 뎁이 주연을 맡기로 결정하자 다들 말렸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6일 개봉된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은 뜻하지 않았던 1편의 ‘흥행 대박’ 자신감 속에 1편의 2배가 넘는 3억 달러에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 부음으로써 더 강력하고 흡인력 있는 모험담을 만들어 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흥행 비결은 한마디로 ‘퓨전’적 상상력의 성공으로 풀이된다. 내러티브와 이미지의 퓨전, 동서양의 퓨전,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퓨전에서부터 사랑 낭만 배신 같은 인간 내면의 감정들까지, 섞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섞어 하나로 꿰어 놓았다. 1편보다 완숙한 퓨전 테크닉을 보여 주는 2편은 1편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고 정밀한 컴퓨터그래픽이 펼쳐 놓은 장면들이 박진감 넘친다. 1편에서는 달 밝은 밤이면 해적선이 유령선으로 변하고 해적들이 해골이 되어 바다 밑을 떼 지어 몰려가는 장면이 을씨년스러운 충격을 주었는데 2편에서는 썩어 가는 유령선 플라잉 더치 맨과 문어처럼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얼굴을 가진 바다괴물,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식인 풍습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배우들의 존재감도 1편보다 활력을 더한다. 1편에서 괴상하고 이기적이며, 심지어 걸음걸이조차도 전혀 해적 같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어 낸 주인공 잭 스패로우 선장 역의 조니 뎁은 다시 한번 천재적 배우임을 증명했다.

해적 주제에 자신의 배 ‘블랙 펄’까지 빼앗긴 잭은 10년간 배를 다시 소유하는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주겠다고 바다 밑 전설적 존재인 데비 존스(빌 나이)와 약속했다. 2편은 약속 기한이 다 차서 데비 존스로부터 영혼을 지킬 방법에 골몰하다 윌 터너(올랜도 볼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라 나이틀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잭은 영웅이면서도 자기 살기에 급급하고 비겁하기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영웅도 결국 평범한 인간이란 점에서 잭은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캐릭터다. 살기 위해 배신도 서슴지 않는 그의 모습은 비열하다기보다 안쓰러움을 느끼게 해 이제 더는 신화나 정의를 믿지 않는 현대인들의 또 다른 은유처럼 보인다.

수십 명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각종 판타지와 호쾌한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엘리자베스와 잭이 서로를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기 위해 밀고 당기는 로맨틱한 감정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2편에서 모든 퓨전을 하나로 꿰는 것은 여전히 ‘사랑’이다. 윌과 엘리자베스의 사랑, 엘리자베스를 향한 잭의 은밀한 마음뿐 아니라 데비 존스가 자신의 심장을 따로 상자(함)에 보관하게 된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3편으로 이어진다. 12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