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블뢰가 돌아왔다.”
늙은 선수들, 녹슨 득점포, 믿음이 안 가는 감독, 은퇴를 눈앞에 둔 지네딘 지단의 무거운 몸놀림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티에리 앙리 등 갖가지 문제로 고달픈 시간을 보냈던 프랑스가 대망의 결승에 올랐다. 팀 전체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해결된 결과다.
1998년 자국에서 벌어졌던 월드컵 우승을 기폭제로 이후 수년간 지속됐던 ‘세계 최강’의 위용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이번 월드컵의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프랑스를 우승 후보 그룹의 윗자리에 올려놓기에는 외관상 더 강해 보이는 후보들이 존재했던 게 사실. 결승 상대 이탈리아는 차치하고라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스페인은 절정기로 치닫는 뛰어난 선수들, 소속 클럽에서 컨디션이 매우 좋은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는 팀들이었다. 따라서 프랑스가 ‘우승까지 갈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팀’이기는 하더라도 ‘정말로 우승컵을 거머쥘 팀’ 수준의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어쩌면 프랑스 최대의 고비는 조별 리그였다. 조별 리그는 클럽축구시장에서 막대한 몸값으로 평가되는 프랑스 선수들의 정신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경기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우승 후보 0순위였던 프랑스는 ‘능력은 있으되 정신력이 부족한’ 모습을 여지없이 노출하며 속절없이 짐을 싸야 했다.
하지만 조별 리그를 일단 통과하게 되면 프랑스는 틀림없는 강점을 지닌 팀이다. 그것은 다른 팀들과는 비견될 수 없는 ‘경험’. 스페인과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메이저 국가대항전’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선수들의 활약에 의존했던 반면 프랑스는 경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수들로 무장되어 있는 팀이다. 프랑크 리베리와 플로랑 말루다는 적어도 이번 월드컵까지는 선배들의 플레이에 ‘활력소와 기동력’이라는 양념을 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판 한판이 결승전과도 같으며 한순간의 플레이 하나, 행동 하나가 승부의 저울추를 바꿀 수 있는 16강전부터의 토너먼트에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프랑스 선수들은 긴장감 넘치는 단판 승부에서 시시각각의 경기 흐름에 따라 해야 할 플레이와 하지 말아야 할 플레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프랑스 결승행의 중심에는 ‘축구사의 새로운 전설 한 대목’을 쓰고 있는 지단이 있다. 클럽에서 이미 은퇴 경기를 치른 지단이 우승 후보 0순위인 브라질을 상대로 펼쳐 보인 ‘다른 행성에서 온 듯한 플레이’는 지구촌 축구팬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단의 몸놀림이 갑자기(?) 가벼워짐과 동시에 프랑스의 다른 문제들도 해결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앙리의 다소 거만한 제스처와 환한 웃음이 카메라에 비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징표다.
소속 클럽에서의 활약에 못 미쳤던 파트리크 비에라와 클로드 마켈렐레도 클럽축구에서의 실력이 그대로 나오고 있는 상태. 이번 대회 ‘최악의 감독’ 자리를 다투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위신도 자연스레 상승했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