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대규모 미사일 시험발사 강행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대응’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대화를 통한 해법’에 매달리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사일 발사 전에도 정부는 ‘차분한 대응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대북(對北) 압박정책을 취하지 않았으나 결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북 장관급회담을 예정대로 열겠다는 정부에 대해 “대북정책에서도 역(逆)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신중한 대응의 약점=정부는 5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연 뒤 “북한을 압박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북한을 대화의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항의는 하되 쌀 차관 제공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는 것 외에 기존 남북관계는 그대로 유지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경우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정부 내에도 많다.
이런 전망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이번 미사일 발사는 정상적 군사훈련의 일환”이라고 강변하며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남북 장관급회담 의미 있나=정부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통해 11∼14일 개최 예정인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그대로 하기로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미사일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성과가 없을 것이 뻔한데도 정부가 회담을 강행할 경우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의 국제적인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회담을 예정대로 하게 될 경우 국민은 정부의 판단에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고, 미국과 일본은 ‘남북한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 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미사일 발사 시 북한에 쌀이나 비료를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북한은 이를 무시했다.
많은 북한 전문가는 회담을 열어 북한에 항의해봤자 북한은 ‘미사일을 남측으로 쏠 생각은 없다. 내정 간섭하지 말라’고 버틸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고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대북 지원으로 북한을 회유할 수도 없다. 지금은 한국의 ‘채찍’도 ‘당근’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회담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5일과 6일 각각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도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등 일부 부처가 회담 개최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일부가 예정대로 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노 대통령도 통일부 측에 힘을 실어 준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이 침묵하는 이유는=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절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5월 몽골에서 ‘조건 없는 대북 제도적 물질적 지원’ 발언을 할 때나 4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할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해 서주석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이 정부 성명을 발표했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내외신 브리핑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나서서 미사일 발사에 항의할 경우 북한의 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는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