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8시경 서울 지하철 4호선 회현역. 한 여성이 멈춰선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시커먼 틈새로 비명을 질렀다. 조그만 손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이의 손이었다.
퇴근길이던 우리은행 이국민(44·사진) 차장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20여 명이 모여들었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 씨는 급한 마음에 일단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틈 사이로 한 팔을 밀어 넣고는 외쳤다.
“도와주세요. 지하철을 세워야 합니다.”
그제야 한 승객이 지하철이 들어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이 씨는 지하철이 멈추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손끝으로 아이를 더듬어 좁은 틈새로 끌어올렸다.
그는 “너무 당황해 아이의 머리핀을 떨어뜨리고 얼굴에 상처도 냈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눈물범벅이 된 6세 소녀는 울먹이며 엄마 품에 안겼다.
이 씨는 20년 전인 1986년에도 서울 용산역에서 한 노인을 구했다. 행인들이 계단에서 굴러 피투성이가 된 노인을 모른 척 지나쳤지만 그는 보자마자 노인을 업고 개찰구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노인은 위험한 상황을 넘겼다. 이 씨는 “누군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몸을 던져 소녀를 구한 이 씨의 선행을 전해들은 우리은행 직원들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게 진정한 용기”라며 사내 게시판에 수십 건의 격려 글을 올렸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