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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불행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상실’

입력 | 2006-07-08 03:00:00

가까운 이의 느닷없는 상실로 인한 비통은 무자비한 파도다. 살아남은 사람을 덮쳐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옭아매고 남은 날들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 책은 저자가 그 격랑을 몸부림치며 헤쳐 나간 기록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상실/조앤 디디온 지음·이은선 옮김/287쪽·9000원·시공사

인생은 한순간에 달라진다. 평범한 어느 순간에.

2003년 12월 저자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아침, 갓 결혼한 저자의 외동딸 퀸태나는 독감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폐렴과 패혈성 쇼크로 이어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불과 닷새 후, 집에서 막 저녁식사를 하려던 저자의 남편은 중증 관상동맥 질환으로 느닷없이 세상을 뜨고 만다.

비통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비통은 파도처럼, 발작처럼 찾아온다. 정신과 의사 에릭 린더만은 비통을 이렇게 정의했다.

“20분에서 한 시간가량 육체적 고통이 파도처럼 느껴지는 기분. 목이 메고, 숨이 막히고, 한숨이 나오고, 속이 텅 빈 것 같고, 몸에 힘이 없는 느낌. 긴장상태나 정신적 아픔으로 표현되는 주관적이고 강렬한 고통.”

미국의 저명한 정치사회 비평가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비통이라는 파도가 자신을 덮친 뒤 평범한 일상이 끔찍한 나날로 변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했다.

이제 그만 하라고, 그만 하면 되었다고 어깨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은 막막하다. 울음소리는 없지만 냉정한 표정 아래로 출렁이는 슬픔과 자괴감, 예고 없이 섬광처럼 찾아오는 기억들과 사투를 벌이는 몸부림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첫날 밤, 저자는 혼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남편이 더는 곁에 없다는 사실을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저자는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유해를 묻고도 저자는 “어린아이처럼 열심히 생각하고 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비정상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책의 원제(The Year of Magical Thinking)는 저자가 그처럼 ‘마법’을 바라며 보낸 1년간을 가리킨다. 저자는 남편의 옷장을 정리하다가도 끝내 신발을 처분하지 못한다. “그가 돌아오면 신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망이 효력을 잃었다고 결론 내릴 마음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남편의 유해를 묻고 어느 정도 회복된 딸을 보살피면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를 생각하던 때, 딸은 다시 쓰러지고 이번에는 더욱 회복될 가망이 줄어들었다.

두 번의 상실을 겪으며 저자는 과거의 실수를 복기하기 시작한다. 그때 이사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이와 함께 모든 걸 내가 망가뜨렸다고,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자괴감과 자기 연민이 찾아온다.

살면서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고인을 단념하고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잘 떠나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책은 끝을 맺는다.

지난해 ‘전미(全美) 도서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이 책은 상실로 인한 비통함이 어떤 식으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마법’을 꿈꾸게 하는지를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묘사해 ‘애도 문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미국인이 감탄했다는 문체의 미려함은 아무래도 잘 전달되지 않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아릿한 느낌이 지속될 만큼 저자의 비통은, 아프다. 비통에 빠진 사람 곁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번역자 후기에는 투병하던 저자의 딸 퀸태나도 이 책이 출간된 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