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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만의 귀향… 이제 맘껏 숨쉬리라

입력 | 2006-07-08 03:01:00

일본 도쿄대에 머물던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 47책이 7일 93년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오대산본은 임진왜란 이후 전주본을 바탕으로 새로 인쇄한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강병기 기자


《일본 도쿄대에 소장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이 7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험난한 여정을 조선왕조실록의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고국 땅을 다시 밟아 보는 게 얼마 만인가. 강원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던 내가 1913년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갔으니 93년 만이다. 당시 조선을 강점하고 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은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이란 이름의 나와 내 친구들 760여 책을 도쿄대 전신인 도쿄제국대에 넘겼다. 그때 배로 건넜던 대한해협을 나는 이제 조국의 비행기 편으로 건너서 돌아왔다.

7일 오후 아시아나항공 OZ107편과 OZ101편에 나뉘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습기 제거 장치가 있는 나무 상자에 갇힌 몸은 뻐근했지만 조국에 돌아왔다는 기쁨에 모든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정족산 등 조선왕조의 4대 사고 중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남은 전주본을 다시 복원하면서 전주본의 오탈자까지 함께 잡아 만들어졌다. 역사가들이 ‘학술적 가치가 가장 높다’고 인정하는 이유다.

그간 일본에 끌려간 우리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도쿄대 도서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나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친구들 중 일부를 잃었다. 나와 외부로 대출된 친구들만 살아남았다. 이 중 27책은 다행히도 1932년 경성제대로 이관돼 고향 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중종실록 29책, 성종실록 7책 등 나와 함께 살아남은 47책은 계속 도쿄대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고맙게도 우리들의 반환 운동이 시작된 것은 올 3월이었다.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구성돼 공동의장인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과 봉선사 주지 철안 스님이 반환 운동에 나섰다.

3월 15일 1차 협상에 이어 4월 17일 2차 협상까지 했으나 도쿄대가 처분 규정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환수위가 1932년 내 친구들이 경성제대에 돌아간 선례를 들었지만 도쿄대는 요지부동인 듯 보여 답답했다.

그러나 도쿄대도 곤란했던 것 같다. 5월 16일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총장이 서울대 정운찬 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오대산본을 국립대학 간 학술교류 차원에서 서울대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때 한국은 ‘환수’ 일본은 ‘기증’이란 용어를 쓰기로 합의했다.

나로서는 빨리 고향에 돌아온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뿐이다. 귀국 후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머무르고 있는 친구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는 듯하다.

그러나 고국산천을 직접 보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내가 들어 있는 나무 상자는 14일 서울대와 도쿄대 간의 기증 협약식 이후에 뚜껑이 열리게 된다.

문화재청은 19일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나의 국보 지정 문제와 거처를 어디에 마련해 줄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들었다. 서울대 규장각과 오대산 월정사가 서로 줄다리기를 한다고 들었지만 조국 땅에 돌아온 이상 어디인들 내 몸을 편히 쉬지 못할까.

22일에는 꿈에 그리던 고향 월정사를 방문한다. 거기서 내가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올릴 것이다. 천지신명께 그동안 내가 어떻게 떠돌아다녔는지를 소상히 알릴 생각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