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후 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일반인들이 재산을 불리는 데 가장 유용하게 활용한 재테크 수단은 주식과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가격은 어지간하면 하락하지 않아 안정성이 높은 재테크 수단으로 오랫동안 주목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이 발표됐지만, 여전히 부동산은 국민 자산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주식은 ‘도박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장기간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2003년부터 증시가 강한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고, 선진국처럼 간접투자 바람이 확산되면서 주식은 재테크의 신(新)주류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이 두 자산을 분리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는 ‘두 자산은 대체재(代替財)’라는 믿음, 즉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좋아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올해 들어 여지없이 깨졌다. 두 자산 중 한쪽이 잘못됐을 때 다른 한 쪽이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반적인 경기에 따라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 같은 모습을 보였다.
○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현상
지난달 초 시중 부동(浮動)자금이 갑자기 크게 늘어난 일이 있었다.
6월 초 대표적인 단기 부동자금 지표인 머니마켓펀드(MMF) 수탁액이 4월 말에 비해 약 6조 원이나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 주가와 부동산은 동반 폭락했다.
한 은행의 프리이빗뱅커(PB)는 “다주택 보유자들이 정부의 강공(强攻)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를 팔아 부동자금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증시에서도 자금이 빠르게 이탈하며 주가가 폭락했다.
부동산에서 빠진 돈이 증시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것은 물론, 자산시장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또 두 자산의 가격은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1990년대 이후 국내 부동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인 것은 두 차례. 그런데 이 두 시기 모두 주가도 하락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망국론’이 거론될 정도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토지공개념이라는 급진적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런 강공 덕에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부동산에 몰려 있던 자금은 증시로 흘러들어오지 않았고 증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 부동산 위축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전문가들은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 증권사 PB는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 부자들이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발상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양쪽 자산에 투자하는 돈의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한쪽이 나쁘다고 그 돈을 빼서 다른 쪽에 넣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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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증시 부동산 경기에 달려▼
또 다른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 심리도 위축된다는 점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001년 한 심포지엄에서 “주택 가격이 1달러 오르면 소비는 약 10∼15센트 늘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반대로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그만큼 소비가 위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경제 구조는 다르다.
하지만 강도는 달라도 한국도 부동산 가격이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세금과 대출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면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나, 대출 금리를 높이는 것 모두 소비를 위축시키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김성봉 연구원은 “한국도 미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줄어들고 경기도 둔화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결국 올해 하반기 증시는 부동산 경기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노무현 대통령 부동산-주식 발언록
△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다.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고 주식을 사는 국민들이 늘어나는 것이 좋으며 부동산 정책에 다걸기(올인)하고자 한다.”(지난해 7월 17일, 5부 요인 만찬에서)
△“전반기에는 나라 살림살이에 전력투구하다 여당 과반수가 무너져 새로운 논리를 준비했다. 어떻게 발표할 것이냐 고심했는데 주식시장이 1000 넘어 안정되는 것을 보고 이제 정치구도 얘기를 좀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29일,기자간담회 때 대연정 제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며)
△“나는 집이 있었는데 팔았다. 퇴임 후에도 집을 안 사고 오히려 주식투자를 하겠다.” (지난해 8월 26일,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기획단 소속 의원과의 만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