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에 사는 발레리 크냐즈킨(45) 씨는 한 달에 1000달러(약 95만 원) 정도를 버는 전형적인 모스크바 중산층이다. 작은 가게를 경영하는 그는 주말이면 소일거리로 전자상가를 찾는다. 그는 가족과 함께 모스크바 최대의 전자상가인 ‘가르부시카’에서 온종일을 보낸다. 가르부시카의 상점들은 지난해부터 가게 앞에 내놓는 간판 상품들을 브라운관 TV에서 PDP와 액정표시장치(LCD) TV로 바꿨다. 상품의 구색과 질은 한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4, 5년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 가전제품은 최고의 상류층만 구입하는 고가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모스크바의 중산층도 디지털 제품군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디지털카메라가 248만 대나 팔렸다. 이는 2004년의 2배 규모다. 디지털 가전시장의 주역이 선진국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
○신흥 시장으로 주도권 이동
지난해 4분기(10∼12월)에는 중국의 PDP TV 시장 규모가 일본을 앞지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 시장 규모는 60만8000대로 일본의 47만9000대보다 27%나 많았다.
일본의 노무라연구소는 “2001년에는 전 세계 LCD TV 시장의 90%를 선진국이 차지했으나 2010년에는 러시아 등 신흥 시장의 비중이 40%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 시장에서 디지털 가전의 소비가 늘어난 것은 이들 지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 러시아와 중남미 지역에서는 원유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
디지털 가전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판매가 느는 이유다. 특히 차세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한중일 가전업체들의 경쟁은 지속적인 가격 하락을 불러오고 있다
○구체적인 손익은 따져봐야
전문가들은 신흥 시장의 성장이 전자업계 전체에 이익이 되겠지만, 구체적인 손익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판매상들은 픽셀 수가 많고 줌 기능이 있으면서 사용 방법도 편리한 ‘저가(低價)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한국 업체들이 신흥 시장 확대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G경제연구원 오영일 책임연구원은 “중남미와 인도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지역 업체에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본격 진출하면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그는 “한국 업체들의 경우 지나치게 최고급품 위주의 마케팅을 강조한다”며 “아직까지는 빈부 격차가 큰 지역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