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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강규형]“축구는 축구로서 즐겨라”

입력 | 2006-07-10 03:06:00


내가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병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은 녹화 방영된 이 대회의 멋진 경기들을 뒤늦게 보면서 축구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걸어 다니는 월드컵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카를 하인츠 하이만(82) 키커지 발행인을 비롯한 축구전문가들은 역대 최고의 월드컵으로 1970년을, 역대 최고의 팀으로 이 대회 브라질 팀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는?”이라는 질문에 1970년의 세 경기가 빠지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결승전, 브라질과 잉글랜드의 예선전, 그리고 젊은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골절된 팔에 붕대를 감고 연장 투혼을 발휘한 서독과 이탈리아의 준결승전이 그것이다. 이번에도 이탈리아와 독일은 준결승전에서 연장전 명승부를 다시 연출했다.

이 중 필자는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과 역대 가장 빼어난 골키퍼 중 하나인 고든 뱅크스가 속한 잉글랜드 간에 벌어진 예선전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로 평가한다. 펠레, 자이르지뉴, 토스탕과 같은 초특급 브라질 공격수들의 파상공세를 기적과 같은 선방으로 막아낸 뱅크스의 신들린 듯한 플레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밀물과 썰물이 자연스럽게 교체되듯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가운데 건강한 격렬함이 가미된 이 경기는 축구라는 야만적인 스포츠가 우아한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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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통산 4번째 우승

독일월드컵 결승전 이탈리아-프랑스

3·4위전 독일-포르투갈 득점 장면

독일월드컵 3·4위전 독일-포르투갈

4강전 프랑스-포르투갈 결승골 장면

독일월드컵 4강전 프랑스-포르투갈

4강전 이탈리아-독일 연속골 장면

독일월드컵 4강전 이탈리아-독일

그러나 아쉽게도 1974년 서독 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가 타락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지 않는 수비 위주 전략이 득세했다. 이기기 위해서 반칙도 마다않는 행태도 점점 심해졌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프랑스와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의) 서독의 준결승 명승부와 같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론 이 경기에서도 서독 골키퍼 토니 슈마허의 혐오스러운 반칙이 있었다) 월드컵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재미는 사라져갔다. 특히 3, 4위전은 물론이고 결승전은 으레 재미없기 마련이었다.

최악의 예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었다. 실력이 처지는 아르헨티나의 비기고 보자 식 공 돌리기와 반칙이 난무했던 이 추악한 경기를 보면 축구의 미래가 없어 보였다. 다행히 백태클, 오프사이드, 백패스 등에 관한 경기 룰의 비약적 발전으로 야비한 반칙행위에 대한 제재와 원활한 경기진행이 촉진돼 경기수준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결승전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경기의 수준이 그런대로 높은 편이었다.

한국선수들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사력을 다했고 표면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 수준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패한 스위스전에서의 경기력이 이기거나 비긴 앞서의 두 경기보다 그나마 나았다. 그동안 한국축구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열정은 높았지만 경기력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다. 2002년에 개최국으로서 체면을 살리기 위해 거스 히딩크라는 ‘족집게 고액 과외교사’를 채용해 큰 효과를 봤으나, 그러한 방식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부유층 자제가 족집게 과외로 명문대에 가는 데 성공했더라도 막상 대학에 들어와 진짜 실력이 모자라면 교수들과 동료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축구에는 근성과 스피드, 그리고 끈끈함이 있지만 아직 ‘아름다움’은 결여돼 있다. 창조적인 면이 결여된 기계적이며 도식적인 플레이는 마치 ‘노동집약형 산업’을 보는 듯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의 축구팬들이 코트디부아르와 트리니다드토바고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비록 좋지 못한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지만 수준급의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떠나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조언했듯이 한국축구는 “국제경험을 많이 쌓아 경기력을 향상”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하겠다.

그리고 팬들도 축구를 진정으로 즐기기보다는 승패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지나친 스포츠 애국주의를 종종 드러낸다. 또한 응원문화의 무질서와 월드컵의 상업화도 우려할 수준에 다다랐다. 이제 우리나라는 축구와 월드컵에 올인하는 과열상태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기력 향상과 건전한 응원문화의 정착에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독일 월드컵 개시 직전에 히딩크 감독이 우리에게 준 충고는 적절하다 하겠다.

한국인들이여, “축구는 축구로서 즐겨라”.

강규형 명지대교수·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