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기업 투명성 강화를 겨냥해 제정한 사베인-옥슬리법이 15일(현지시각)부터 미국에 상장한 외국기업에도 적용됨에 따라 외국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0일자 보도에서 1200여 외국기업이 사베인-옥슬리법에 따른 회계관리 강화 대상에 포함된다면서 특히 12월말 결산 법인들이 시간에 쫓기게 됐다고 지적했다.
적용 대상은 자본금 7500만 달러 이상의 미국 내 모든 외국 상장기업이다.
외국기업들이 특히 신경쓰는 부분은 사베인-옥슬리법 가운데서도 재계가 '독소조항'이라고 불만이 큰 '섹션 404'다.
이 조항은 기업 이사회가 스스로 회계 시스템을 점검해 문제가 있으면 이를 감독기관인 미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하는 한편 회사 비용을 들여 시정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회계 컨설팅사 PwC 관계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12월 결산법인들이 특히 시간에 쫓기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SEC도 재계의 이런 지적을 일부 인정해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자체 조사된 "회계상 약점들"을 보고하는 기업에 대해 당장 벌금을 부과하지 않을 방침임을 밝혔다.
대신 문제점을 어떻게 시정하는지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런 공개가 많을 경우 투자자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PwC에 따르면 사베인-옥슬리법이 2002년 7월 우선 미국기업을 대상으로 첫 발효된 그해 11월 적용대상 기업의 16%가 '한 건 혹은 그 이상의 회계상 문제'를 보고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에 상장한 외국기업들도 나름대로 사베인-옥슬리법에 대비해오기는 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HSBC의 경우 지난 회계연도에만 섹션 404 대비를 위해 2840만 달러를 지출했으며, 글락소스미스클라인도 44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집계됐다.
라파르주의 경우 지난해 1280만 달러를 들여 준비했으며 베오리아의 경우 3년간 약 3000만달러를 들여 회계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사베인-옥슬리법 적응과 관련해 유럽 기업이 아시아나 중남미에 비해 훨씬 '적대적'인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재계전문 조사기관 '마르자스'가 조사해 지난달 말 발표한 바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유럽 기업 6개 가운데 1개 꼴로 사베인-옥슬리법 때문에 '상장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규제가 너무 까다롭다는 것이 이유다.
사베인-옥슬리법 때문에 `상장을 포기할 것'이라고 확실히 응답한 케이스로부터 '포기할 수도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모두 합쳐 17%로 나온데 반해 '잔류하겠다'는 응답은 59%로 나타났다.
아시아 기업의 경우 상장포기 의사를 밝힌 케이스가 없었다고 마르자스는 전했다. 반면 83%는 "잔류한다"는 확실한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중남미 기업 역시 상장포기 가능성을 밝힌 케이스가 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는 54개 유럽기업과 18개 아시아 기업, 그리고 중남미 기업 16개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