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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허만호]‘北미사일’ 뒷짐지다 뒤통수 맞는다

입력 | 2006-07-11 03:00:00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국내 전문가 사이에서는 ‘대미 협상용’이며,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풀고 직접협상에 임하라는 압력’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우려된다.

첫째,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한국의 안보와 직접 연결시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 KN-02, 화성 5·6호, 스커드D는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서울 등 대도시 인구밀집지역에 화·생 탄두를 장착한 단거리 미사일이 한 발이라도 떨어지면 안보불감증에 젖어 있는 한국은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

북한군의 남침 시 우리의 초기대응은 한국이 지상군을 담당하고, 미국은 신속히 보낼 수 있는 공군을 담당하는 연합작전을 기본으로 한다. 걸프전 때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이 다란 공군기지를 공격해 미군의 인명피해를 많이 내고 증원을 어렵게 했던 것처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은 미군 증원기지를 공격해 연합작전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또 미 지상군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거점에서 노동, 대포동1·2호, 백두산1호 등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면 인명피해에 민감한 미국 의회나 여론이 한국 파병에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20만 명의 특수부대를 비롯한 120만 북한군을 한국군만의 힘으로 물리칠 수 없다면 중간거점 공격 가능성은 치명적인 안보위협이 되고, 평시에도 대북 협상력을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다.

둘째,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직접협상에 임하면 북한은 단순히 금융제재를 풀고 압박을 완화하라는 데 멈추지 않고 미-북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나올 것이다. 이는 1984년부터 북한이 추구해 온 ‘남북 불가침선언’, ‘대미 평화협정 체결’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또 6·25전쟁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침략·도발한 전쟁이니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된다’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주는 셈이다.

정전협정 제62조는 대체협정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으로 기술하고 있다. 대체협정이 반드시 ‘평화협정’일 필요는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잘못하면 북한이 설정하는 형식논리에 쫓겨 내용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 있고, 실제적으로 평화정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날 수많은 남북한 간의 합의가 북한의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준수 혹은 폐기되어 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남북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합의가 지속적으로 준수되어 제도적으로 안착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누가 주체가 되어 어떤 형식을 취할 것인가는 전환 후의 구속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남북기본합의서체제가 완비되어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 남북한 양측이 기본합의서체제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평화체제의 주체성과 실제적 구속성 면에서 가장 바람직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기본합의서체제를 사문화시켜 ‘평화의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큰 오점을 남겼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야기된 사태 해결에 몰입되어 더 큰 안보위협을 자초하는 우를 현 정부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허만호 경북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