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중의 정상’들이 모이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가 처음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5∼17일에 열린다.
‘선진국들의 사교 모임’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G8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G8 국가들은 전 세계 경제에서 수출의 49%, 산업생산의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자산의 49%도 이들 8개국이 갖고 있다.
이번 G8 정상회의의 주 의제는 에너지 안보와 전염병 퇴치를 위한 국제적 협력방안, 교육 문제. 하지만 이번 회의는 의제와 상관없이 북한 미사일과 이란 핵 등 국제 현안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북한 미사일, 이란 핵문제 놓고 격론 예상=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G8 정상회의 공식 개최 전날인 14일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한다. 하지만 최근 미-러 관계는 사상 최악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러시아와 사이가 나쁜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불러 그루지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지지해 푸틴 대통령을 자극했다.
지난달 3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G8 외교장관 회의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란 핵문제를 놓고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게다가 북한 미사일 사태까지 일어나 두 나라 사이는 더 불편해졌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과 이란을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대북 결의안에도 반대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은 “G8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협조하라”며 러시아에 압력을 넣고 있다.
▽어깨에 힘 들어간 러시아 위상과시 노려=하지만 러시아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상회의를 여는 것은 각종 현안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듣고 진지하게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근 급속도로 회복된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다.
러시아는 미국이 제기하는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 그 대신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의 위상을 강화할 에너지 문제를 이번 정상회의의 주 의제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오일머니’로 외환 보유액이 세계 5위 규모(20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경제력이 커졌다. 이제 더는 미국에 고분고분할 필요가 없다. 올해 초에는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관을 잠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부시 대통령은 최근 CNN에 출연해 “이번에 푸틴 대통령을 만나면 ‘설교’ 대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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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G8 관전법▼
세계 경제 강국들의 모임으로 평가받는 G8. 하지만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인도는 회원이 아니다. 8번째 회원국 러시아보다 경제 규모가 큰 한국 브라질 멕시코 스페인 등도 빠져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G8는 재편돼야 할 과거 냉전 시절의 유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G8 개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편 문제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AP통신은 9일 “회원국 증대 문제는 올해도, 내년에도 의제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며 “회원국 관료들은 그 주제에 대해 얘기하기조차 꺼린다”고 전했다.
당초 G8는 197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5개국을 첫 구성원으로 시작됐고 76년 이탈리아, 77년 캐나다가 합류해 G7으로 거듭났다. 이후 러시아의 참여는 1998년에야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국의 회원 가입 필요성을 주장한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도 그렇지만 북한과 이란 핵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중국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제에 대폭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일부 전문가는 2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의 연례모임인 G20 수준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이럴 경우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가 참여하게 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