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월드컵 대회 때 일반 국민은 태극기를 휘날리고 ‘대∼한민국!’을 절규했다. 그러나 그때도 권력 주변에선 ‘민족공조’를 위해 한반도기를 곧잘 들고 나왔다. 남북이 갈라진 것도 모자라 위아래도 갈라진 것일까.
그 한반도 꼴이 7월 들어 심상치 않다. 북에서 연이어 쏘아 올린 일곱 발의 미사일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도 사거리 안에 드는 이 미사일 불장난은 미국의 하와이나 알래스카까지 위협하는 ‘군사적 위력’을 시위했다. 한반도에 또다시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는 것일까…. 6·25 남북전쟁을 치른 우리들 세대에겐 도무지 불안하기만 한 요즈음이다.
그때는 북이 강했고 남은 약했다. 게다가 6·25전쟁 한 해 전엔 공산군이 중국대륙을 장악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고무적인 선례도 있었다. 김일성은 힘을 믿고 승리를 확신하며 남침을 도발했다. 그 결과 민족 성원 1할의 인명을 살육하고 한반도 전역을 폐허화한 끝에 거의 남침 당시와 비슷한 경계선에서 휴전 협정을 맺었다. 평화도 통일도 다 잃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민족사 최대의 비극을 자초한 남침 전쟁의 결말이다.
민족 앞에 저지른 이 엄청난 죄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려는 북측은 개전 직후부터 전쟁 발발의 책임을 남측에 덮어씌우려는 갖가지 선전 공세를 취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북의 공식적인 ‘북침설’ 주장 그늘에서 ‘남침 함정설’이 그래서 한동안 사행(蛇行)했다. 이승만과 미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필요’로 했기에 남침만 하면 금방 한반도 전역을 삼킬 수 있을 것처럼 유혹하는 함정을 파 거기에 어리석은 북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이 함정설의 지지 근거가 전쟁이 ‘누구 득이 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사실 6·25전쟁 한 달 전에 실시된 한국 총선 결과 남북협상파가 대거 국회에 진출하여 이 대통령 지지자는 소수파로 몰리게 됐다. 전쟁은 그러한 이 대통령의 위기를 구출하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6·25전쟁은 냉전시대의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한 서방군사동맹의 강화에 절호의 계기가 됐다. 전쟁의 수혜자가 전쟁의 도발자가 된다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이 말려든 가설이었다.
전쟁에는 승자, 패자가 있다. 이득을 보는 측, 손실을 보는 측이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엔 전쟁에 말려든 양측이 다 어떤 승리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음으로써 모두 패자가 된다는 것이 현대전의 양상이 됐다. 따라서 현대전에서 최대의 승자는 전쟁을 피하는 데 성공한 나라다. 6·25전쟁에서는 남북한이 다 패자고 최대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미군의 병참기지로 한반도의 전쟁 특수(特需) 때문에 엄청난 돈을 벌어 단시일에 전후 복구의 부흥 기적을 이룬 일본! 그를 보면서 ‘전쟁수혜자=전쟁도발자론’을 신봉하는 수정주의 이론가들이 6·25전쟁의 막후에 맥아더 장군을 둘러싼 일본 지도자들의 ‘음모설’은 제기 않는 걸 보고 나는 그들의 ‘상상력의 빈곤’에 실망하곤 한다.
미사일 발사로 다시 감도는 한반도의 전운―그러나 이번에는 파산 직전의 북이 힘을 믿고 승리를 확신하며 전쟁을 도발할 것이라 믿을 사람은 없다. 이판사판의 막판에 ‘내 죽은 뒤 노아의 대홍수를!’ 하는 절망감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무하진 않다. 태극기보다 한반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가능성 때문에 해서는 아니 될 ‘두려움 앞에서의 협상’과 무한 양보의 퍼주기 햇볕정책을 계속하는 것일까.
그러는 동안 미사일 발사의 구체적 결과는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가속적인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가 그것이다. 심지어 일본 정부의 고위층에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까지 발설되고 있다. 선제공격이란 원래 전쟁을 미연에 막기 위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의 말처럼 ‘전쟁은 막지 못하고 오직 평화만을 막는 것이 예방전쟁’이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난다면 남북한은 다 21세기의 패전국이 되고 일본은 최대의 승전국이 될 것이다. 북의 미사일은 그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첩자가 개발해 줬다고 미래의 ‘수정주의 사가’들은 적게 될까.
최정호 객원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