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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민단체 보조금 지원 ‘주먹구구’

입력 | 2006-07-13 03:00:00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범대위)’ 회원 중 폭력시위로 입건된 사람들을 변호 하며 자문한 변호사가 행정자치부 ‘공익사업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범대위 소속 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결정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 시민단체 보조금제도에 대한 전면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추천단체에 보조금 지급 결정=천낙붕 변호사는 지난해 2월 ‘제3기 공익사업선정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간사를 지냈으며 민변의 추천으로 위원이 됐다.

위원 중에는 현직 흥사단 사무총장, 녹색미래 사무총장 등도 있다. 모두 소속 단체의 추천을 받아 위원으로 선정됐다. 위원을 추천한 흥사단,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녹색미래가 신청한 사업이 올해 행자부의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각각 6900만 원, 8000만 원, 72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 산하 위원회에 시민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실제로 보조금을 받아 내고 있는 것이다.

행자부는 지난달 공익사업선정위원들이 소속 단체가 관련된 사업은 심사하지 않도록 ‘심사기피제도’를 실시했다고 홍보했으나 실상은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평화 문화’ 명분으로 지원 신청=천 위원의 높은 평가 점수로 정부 보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신규 사업이다. 신규사업은 심사평가에서 10점이 감점된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사업은 전년도 활동 실적 평가가 좋지 않아 올해 심사과정에서는 10점 감점을 받았다.

그러나 천 위원은 본인이 평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최고 점수를 줘 두 단체가 각각 총점 86점과 85점의 높은 점수를 받도록 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는 ‘사회통합과 평화문화 형성을 위한 조정, 진행 전문가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해 지원금을 받았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폭력 시위를 벌인 범대위에 참여했던 단체가 평화문화를 명분으로 돈을 받은 것이 눈길을 끈다.

또 이 사업은 지난해에 이미 진행되어 2000만 원이 지원됐다. 지난해 사업에 대한 평가결과는 76.18점으로 보통 정도였다.

천 위원이 자문역을 맡고 있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운동’을 벌이겠다고 신청했다. 사업 내용은 ‘한반도 평화체제 연구사업’ ‘한반도 평화포럼 개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시민캠페인’ 등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단체 중에는 ‘장애우를 위한 바다체험 사업’, ‘북한 모란봉구역 주민 건강 증진과 보건의료 교류 확대 사업’ 등 구체적 활동 목표가 제시된 것들이 있다. 이에 비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사업 내용은 사후 평가가 어려운 내용이 많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은 시민단체에 대한 무차별, 자의적 정부 지원을 제한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시민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2명이 80개사업 평가… 배분 좌지우지▼

행정자치부의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여부와 액수는 공익사업선정위원회가 결정한다.

선정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총 15명으로 구성된다. 선정위원 중 12명이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인사다. 30여 개의 시민단체가 위원을 추천하며 자기 단체 소속 위원을 추천하는 것이 관례다.

보조금을 받는 단체가 추천한 인사가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희한한 시스템인 것이다.

행자부는 성별, 직업, 전문 분야, 소속 단체 유형 등을 고려해 시민단체가 추천한 인물 중에서 합당한 인물을 선정위원으로 선임한다고 했다.

이들 시민단체 추천 위원들과 국회의장이 추천한 3명이 선정위원으로 최종 결정된다.

그러나 시민단체 추천 인사의 대표성을 놓고 시민단체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위원의 임기는 2년이며 매년 보조금을 지급할 단체를 선정한다. 올해에는 321개 단체의 461개 사업이 신청됐다. 위원회는 신청 사업을 ‘사회 통합과 평화’ ‘문화시민사회 구축’ ‘소외계층 인권 신장’ 등 7개 분야로 나누고 분야당 2, 3명의 위원이 평가하도록 해 그 결과를 토대로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추천한 천낙붕 위원은 L 위원과 함께 ‘사회 통합과 평화’ 분야의 심사를 맡아 74개 단체의 80개 신청 사업을 평가해 이 중 28개를 지원 사업으로 최종 선정했다. 총 9억2000만 원 규모로 가장 많다.

이 돈의 배분을 위원 2명이 좌우한 것. 위원은 책임성 및 전문성, 개발성, 사업의 실행 가능성 등 10가지의 기준에 각각 점수를 매긴다. 그러나 기준이 추상적이어서 사실상 위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보조금 지원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천 위원과 L 위원이 매긴 점수는 천차만별이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사업의 경우 천 위원은 68점을 줬으나 L 위원은 87점을 줬다. 삼동청소년회의 ‘한민족 희망, 프로젝트’ 사업에 대해서는 천 위원은 82점을, L 위원은 66점을 줬다.

한국자유총연맹이 신청한 사업의 경우에는 L 위원이 73점을 줬으나 천 위원은 66점을 매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탈락했다. 지원 사업에 대해서는 1년에 두 번 사후 평가를 한다. 2004년까지는 선정위원의 50%가 참가하는 평가위원회가 있었지만 선정위원이 평가할 경우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따라 지금은 회계법인과 연구단체에 평가 용역을 주고 있다.

그러나 외부 용역 평가의 보고서도 달랑 A4 용지 1장에 불과하다. 부실하다는 얘기다.

행자부는 선정된 사업에 대해서는 5, 6월 중 1차로 할당된 지원액의 80%를 지급하고 9월에 중간평가를 거쳐 나머지 20% 지원 여부를 결정한 뒤 다음 해에 다시 결산평가를 한다. 하지만 평가 결과 문제가 지적돼 지원이 중단되거나 대상에서 탈락한 단체는 거의 없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 대책위원회(평택범대위)’에 참가하고 ‘공익사업선정위원회’에서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남한 내 사회단체 중 친북적인 성향이 가장 강한 단체로 꼽힌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등이 포함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미국의 분별없는 행동이 북한의 ‘초강경 조치’를 유도한 근본 원인”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평택범대위에 참가한 단체로 지원금을 받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도 북한 미사일 발사 후 ‘북한의 미사일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문제는 북-미 간의 적대관계에서 비롯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단체는 1997년 창립된 뒤 남북 여성교류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전면 개정 운동을 벌였으며 공익사업선정위원회 이현숙 위원장이 이 단체 출신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바로잡습니다▼

△13일자 ‘평택범대위 자문변호사, 공익사업선정위원 참가’ ‘신청단체 인사가 지급결정’ 제하의 기사와 관련하여 천낙붕 변호사는 평택범대위에 소속된 자문변호사는 아니며,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평택범대위 시위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고 밝혀 왔습니다. 또 천 변호사는 보조금 지급 단체로 결정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인사가 아님이 밝혀져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