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 개 스너피를 탄생시킨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이 이번에는 암컷 개 ‘보나’와 ‘피스’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스너피와 암컷 복제 개를 자연교배시켜 복제 개 2세를 낳으면 인간의 난치병을 연구할 수 있는 질병모델용 개를 대량 확보할 길이 열린다.
다만 논문 발표와 학계의 검증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암컷 복제 개 탄생 소식이 알려지면서 진짜 복제 개인지 진위 논란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어떻게 복제했나
보나와 피스의 복제 원리는 스너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크림색 아프간하운드 종 암컷의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이식한 다음 전기자극을 가해 수정란을 만들었다.
이 수정란을 대리모 개에 착상시킨 결과 2마리의 암컷 복제 개가 태어났다.
그러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는 단계에서는 스너피 복제 때와 다른 기법을 이용했다.
스너피 때는 포도알을 짜내듯 난자에서 핵을 추출하는 ‘쥐어짜기’ 기법을 썼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법을 개발했다는 것.
서울대 동물병원 김민규 박사는 “곧 특허를 출원할 예정이어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쥐어짜기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스너피 출산 때는 123마리의 대리모 개에서 2마리(1마리는 폐사)만 임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12마리의 대리모 개 중 3마리를 임신시켜 복제 성공률을 크게 높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복제 기간도 10분의 1로 줄었다. 스너피 복제에는 2년 6개월이 걸렸으나 보나와 피스는 실험 시작 후 3개월 만에 태어났다.
○ 왜 암컷을 복제했나
개는 암 당뇨병 심장병 등 여러 질병을 인간과 공유한다.
개의 유전자를 조작해 인간 질병을 갖고 태어나게 하면 최적의 질병 연구 모델이 되는 것이다.
다만 다양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같은 질병을 가진 개가 여러 마리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개를 복제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러 마리를 일일이 복제하자니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암컷을 복제하면 수컷과 똑같은 병에 걸리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교배시킬 수 있다.
여기서 나온 새끼들은 부모의 유전형질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같은 병에 걸린 동물을 여러 마리 얻을 수 있게 되는 것.
예를 들어 당뇨병에 걸린 수컷과 암컷 개를 복제해 교배하면 당뇨병에 걸린 새끼 여러 마리를 얻을 수 있다. 새끼 개의 성장과정을 통해 당뇨병의 발병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스너피는 출생 이후 1년 3개월 동안 보통 개와 똑같은 성장 과정과 건강 상태를 보였고, 첫돌이 지난 뒤 발기 능력도 확인됐다”며 “1년 뒤 보나가 생식능력을 갖게 되면 스너피와 자연교배를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인간 질병을 가진 질병 모델 개의 대량 공급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 복제 진위 논란 배제 못해
김 박사는 “보나와 피스의 ‘복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스너피 때보다 더 많은 유전자 마커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체세포를 제공한 개와 복제 개의 유전자 마커가 완전히 일치해야 복제됐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그러나 정말 복제 개인지는 제3의 검증기관 등 학계의 검증과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를 거쳐 최종 판가름 나기 때문에 아직 암컷 복제 개 출산이 성공한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전력(前歷)’ 때문에 더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8월 스너피 출생 관련 논문을 게재한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 파문 직후 스너피 복제에 대해서도 진위 논란이 불거지자 관련 논문을 재검증해 ‘진짜’임을 입증한 바 있다.
황 전 교수 논문 조작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황 전 교수팀이 출생시켰다는 복제 소 ‘영롱이’의 복제 진위도 조사했지만, 당시 영롱이가 연구논문 없이 언론에 발표된 것만으로 복제 소임이 알려진 것이어서 복제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 생명공학자는 “실험에 성공했으면 크게 축하할 일이지만 만에 하나 국제 저널에 실리지 못하기라도 하면 또다시 복제 진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며 “먼저 논문을 발표하지 않고 성급히 공개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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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