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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연인처럼… 때론 원수처럼… 세균과 腸의 야릇한 동거

입력 | 2006-07-14 03:08:00

생쥐에게서는 세균의 공생을 조절하거나 도움을 받는 유전자가 400개 이상 밝혀졌다. 그러나 각 유전자의 구체적인 기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의 장 속에서는 500여 종류의 세균이 발견된다. 그중에는 유산균처럼 장의 소화기능을 도우며 공생하는 것도 있고, 위 사진의 리스테리아균처럼 식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에 공생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국군과 북한군 병사가 간식도 나눠 먹고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낸다.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 상황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우리 몸속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몸속에 세균이 침입하면 면역체계가 가동돼 죽인다. 우리 몸은 세균을 질병을 일으키는 ‘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세균과 더불어 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장이다.》

● 적이냐 친구냐가 문제

사람의 장 속에는 세균이 500여 종류나 살고 있다. 그 수는 자그마치 100조 개. 사람 몸을 구성하는 세포(60조 개)보다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장의 소화기능을 돕는 유산균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생물이 함께 사는 현상을 ‘공생(Symbiosis)’이라고 한다.

장내 세균은 장이 자신들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받아들이도록 신호를 보낸다. 과학자들은 세균이 만들어내는 특정 단백질을 장이 공생 신호로 인식한다고 추측한다.

세균이 신호를 잘못 보내거나 장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공생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장내 공생 관계가 깨진 대표적인 상황이 바로 장염이다. 이때 장 속에서는 ‘듀옥스(dDuox)’라는 물질이 세균을 공격하게 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 지휘관에게 발각되자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총을 들이대는 것처럼 말이다.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원재 교수팀은 듀옥스의 공격 메커니즘을 밝혀내 지난해 11월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최근 아토피 피부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많아진 것도 공생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각종 세균과 공생했지만 깨끗한 실내환경에서 자란 현대인의 몸은 그런 세균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

● ‘맞춤형 유산균’ 등장 전망

사람 장에서 공생하는 세균이 다른 동물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락토바실러스, 플라보박테리아, 플렉시박테리아 등은 사람, 쥐, 심지어 물고기의 장에서도 산다. 생물이 진화하는 동안 장내 세균도 변하는 장 속 환경에 적응하면서 역시 진화해 왔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 교수팀은 요즘 초파리에서 ‘공생 유전자’를 찾고 있다. 초파리의 1만3000개 유전자 중 하나씩 손상시킨 다음 초파리가 살아남으면 형광을 띠게 조작한 세균을 장에 주입한다. 장에서 세균이 무사히 공생하려면 어느 유전자가 필요한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 교수는 “초파리 유전자는 사람과 60∼70% 비슷하다”며 “사람에게서도 공생 유전자를 찾아내 기능을 밝히면 서로 다른 유전형질을 가진 사람마다 적합한 ‘맞춤형 유산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장염에 걸리면 보통 항생제를 투여하게 되는데 항생제는 해로운 세균뿐 아니라 유익한 세균도 함께 없앤다는 단점이 있다. 항생제를 오래 투여하면 세균이 내성이 강해져 약발이 잘 듣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사람마다 공생 유전자의 특성을 밝혀내면 사전에 장염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유익한 세균만 골라 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세균 없인 못 살아

세균이 동식물의 생명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례가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 유전체연구소(TIGR) 조너선 아이슨 박사팀은 포도덩굴 수액을 먹고 사는 유리날개 저격병이라는 곤충의 장 속에 비타민을 만드는 세균이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포도덩굴 수액에는 비타민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세균이 이 곤충의 영양공급원인 셈. 이 연구는 ‘퍼블릭 라이브러리 오브 사이언스 바이올로지’ 6월 6일자에 실렸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