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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배한봉, “어떤 등불이”

입력 | 2006-07-14 03:08:00


어떤 등불이

-배한봉

쇠물닭 가족 헤엄치고 있다.

짙푸른 자라풀 위에

햇발 불러 앉힌 한 폭 평화.

갈숲 지나던 내 인기척에 놀랐는지

목을 뽑아 두리번거린다.

적의는 없었으나,

나 함부로 기웃거린 것이

그들에겐 도발로 보였다는 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 있는데,

붉은 신호등 줄지어 나를 본다.

저 신호등은 쇠물닭의 붉은 이마.

여름 늪을 푸른 신호등이라 여기고

함부로 들어선 나를

서늘하게 일깨우는 자연의 말씀이다.

말하자면,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

상대가

미물이든, 천지 사방이든

혹은 우주든.

우리는 때때로

조심스러워야 하리.

―시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문학의 전당) 중

여름 늪에서 붉은 신호등을 만나 오래 서 계셨다고요? 함부로 첨벙, 늪에 들어섰다가 쇠물닭 교통에게 딱지 끊기고 벌금 물으셨다고요? 물가 식구들 놀라게 한 죄가 있기야 있지만 쇠물닭 열두 가족이 일제히 빨간 불을 켜들다니요. 저들도 거만하게 꽁지를 흔들며 걷거나 무시로 요란한 깃털 박수를 치면서! 제 아무리 유세를 떨어도 스물네 시간 정수리에 빨간 불 켜고 다니느라 머리가 뜨끈뜨끈할 쇠물닭 녀석들! 그래도 자자손손, 빨간 불 켜라고 전해주세요.

―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