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심지원의 묘에서는 윤관 장군 묘역에 둘러쳐진 담장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분묘 배치 때문에 청송 심씨와 파평 윤씨 양 문중의 갈등이 400년간 지속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산송(山訟·묘지에 관한 다툼)문제로 400년 가까이 앙숙이었던 파평 윤(尹)씨와 청송 심(沈)씨 문중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묘 이장에 극적으로 합의했으나 경기도문화재위원회의 불허로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4월 파평 윤씨 대종회와 청송 심씨 대종회는 경기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윤관(?∼1111) 장군 묘(사적 제323호) 위쪽에 있는 영의정 심지원(1593∼1662)의 묘(경기도 기념물 137호) 등 청송 심씨 조상 묘 19기를 윤씨 문중이 제공하는 2500여 평의 터에 이장하기로 합의해 400여 년 묵은 갈등을 해소하기로 했다.
원래 두 문중의 묘지 다툼은 16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지원이 그해 부친의 묘를 윤관 장군 묘역 바로 위에 조성했으며 1658년 국가에서 이 일대 땅을 하사받아 문중 묘역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훗날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파평 윤씨 후손들이 반발하면서 오랜 다툼으로 이어졌으나 마침내 두 문중이 원만한 합의에 이른 것.
그러나 경기도문화재위원회는 최근 두 집안이 신청한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심의한 결과 문화재 원형 훼손이 우려된다며 묘 이전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 위원회는 경기도문화재인 심지원 묘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인근 길가에 세운 비)를 이전할 경우 훼손이 우려된다며 이같이 의결했다.
두 집안은 조만간 재심의를 청구할 예정이다. 파평 윤씨 대종회 윤태일 총장은 “두 문중이 양보하고 애를 썼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밟아 이전 작업을 할 것이기 때문에 원형 훼손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청송 심씨 대종회 측 관계자는 “심의 중 일부 위원이 두 문중의 400년간 싸움도 하나의 문화나 역사로 봐야 한다며 반대 이유를 들었다는데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싸우라는 이야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문화재위원회 한 위원은 “심의 과정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는 고려 요인 중 하나였을 뿐”이라며 “윤관 묘는 사적이고 심지원 묘는 경기도 기념물이지만 어떤 것이 문화 원형으로 가치가 더 있는지 애매해 이전 허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두 집안의 역사적 합의를 존중해 앞으로 더 논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