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反北시위13일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린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 입구에서 북파공작원 관련 단체 회원들이 미사일 모형을 실은 차를 몰고 호텔을 향해 돌진하자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산=박영대 기자
구경하는 北기자들13일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 입구에서 북파공작원 관련 단체 회원들이 미사일 모형을 실은 차를 몰고 격렬한 시위를 펼치자 북측 기자들이 호텔방에서 이를 촬영하고 있다. 부산=박영대 기자
정부는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미사일 문제의 출구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른바 ‘민족 공조’도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됐다.
정부 외교안보부처 내에서도 나왔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회담’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 갈 길을 가겠다”=남북한은 13일 오전 10시 40분경부터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북한 내각책임참사(북측 대표단장)가 참석한 수석대표 접촉을 벌였다.
하지만 이날 접촉에서도 북한은 미사일 발사나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성의 있는 설명 없이 남측의 쌀 지원 등 대북 지원만을 요구했다. 논의가 쳇바퀴를 돌자 권 단장은 “성과가 나기 어려우니 하루 먼저 돌아가겠다”고 밝혔고, 이 장관도 동의했다.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린 종결회의에서 이 장관이 “2박 3일간 편히 지냈느냐”고 묻자 권 단장은 “숙소 조건은 좋았는데 문제는 숙소 조건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다.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이 아팠다”는 뼈 있는 답변을 했다.
북측은 오후 2시 30분부터 10여 분간 계속된 종결회의 직후 예고 없이 기자단에 남측의 태도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나눠 줬다. 북측은 A4 용지 3장에 빼곡히 적은 성명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의 이념을 저버리고 동족을 적대시하며 비이성적인 태도로 이번 회담을 무산시킨 남측의 처사를 엄정하게 계산할 것”이라며 “우리는 결코 빈말을 좋아하지 않으며 우리 갈 길을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남측은 첫날부터 딴생각을 하면서 불순한 목적을 추구했다. 이번 회담은 군사회담이 아니고 6자회담은 더욱 아니다”며 미사일 문제 등을 제기한 남측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남측 대표단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발언을 귀담아듣는 것이 도리다. 사전에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런 성명을 발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은 회담=회담 결렬은 이미 시작 전부터 예견됐다. 정부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쌀 50만 t에 대한 지원 불가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내각 소속 인사들로 이뤄진 북측 대표단에 대해 미사일 문제 및 6자회담 재개 문제를 이야기한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식 발상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군부가 내린 미사일 발사 결정은 ‘대남 일꾼’인 권 단장으로서는 처음부터 권한 밖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정부 고위 당국자는 종결회의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애초부터 사과나 유감 표명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며 북한 국방위원회나 지도층에 우리의 입장이 전달되는 것을 바랐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할 만큼 황당하다”=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권 단장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지켜 준다는 전날 발언에 대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황당하고 정부와 국민을 모욕하는 발언”이라며 발언 취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무리한 회담 강행과 회담 조기 결렬의 책임을 물어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부산=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