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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하위서 올 2관왕’ 장충고 야구부 유영준 감독

입력 | 2006-07-14 03:08:00

변영욱 기자


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장충고와 유신고의 제6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장충고 에이스 이용찬이 6회 유신고 정수빈에게 던진 공이 그만 몸에 맞고 말았다.

두산으로부터 1차 지명을 받고 4억5000만 원이라는 고액의 계약금을 받은 이용찬은 3학년 선수. 그러나 몸에 맞는 볼이 나오자마자 정중하게 모자를 벗었다. 그러더니 1루를 향해 걸어 나가는 정수빈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수빈은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팀워크 강조 스타선수들 시기 없어

프로구단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쟤는 역시 사람이 됐어”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이용찬은 끝까지 잘 던졌고 장충고는 9회 끝내기 안타로 1963년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유영준(44·사진) 장충고 감독에게 그 얘기를 꺼냈더니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학생답게 행동해라. 야구보다 예의가 먼저’라는 말을 해줍니다. 애들이 이제는 그런 기본을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유 감독의 지도 철학이다. 모든 지도자가 학생 야구를 외치지만 현실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고교 선수들의 ‘겉멋’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교 야구의 인기 하락은 학생 야구 특유의 겸손과 패기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 감독은 “연습 시작 전마다 강조하는 것은 애교심과 팀워크입니다. 용찬이가 거액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뒤에도 주위의 시기와 질시가 없어요. 그만큼 용찬이가 동료 후배들에게 잘하기도 하고요”라고 말한다.

유 감독이 장충고 사령탑에 부임한 것은 2002년 가을. 직전까지 6년간 몸담았던 이수중에서 뛰던 많은 선수가 유 감독을 믿고 장충고로 따라왔다. 이용찬 이두환 전진호 김명성 등 올해 우승의 주역은 모두 이수중 시절 유 감독의 수제자들. 그들 중에는 세칭 명문사학의 좋은 조건을 물리치고 온 선수도 있었다. 이들은 고교 입학 첫해에 “우리가 3학년이 될 때 꼭 우승을 하자”고 다짐했고, 2년 뒤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시설 열악해도 유망주들 제발로 찾아와

한때 많은 유망주가 미비한 시설과 지원을 이유로 장충고 입학을 기피했다. 그러나 유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믿는 학부모들은 이제 선뜻 선수들을 장충고로 보내고 있다. 장충고는 벌써 내년 신입생 15명의 스카우트를 끝냈다.

유 감독은 “43년간 좋은 성적을 못 냈는데도 야구부를 유지해 준 학교가 고맙습니다. 전국 대회 2회 우승을 계기로 동문회도 하나로 뭉치고, 야구부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무명 포수출신 ‘잡초감독’…체육교사로 일반 수업도

유영준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다. 중앙대에서 포수로 뛰었던 그는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하고 1986년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입단했다. 1992년까지 선수로 뛰다가 은퇴했고 93년부터는 주무로 3년간 일했다. 1996년 춘천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6년간 이수중 감독을 했다. 장충고로 옮긴 것은 2002년 가을. 장충고에서는 체육 교사를 겸하면서 일주일에 6시간 일반 학생도 가르친다. 선수 시절 힘들고 어렵게 야구를 했던 그는 요즘 동료 교사 40여 명과 함께 한 달에 1만 원씩을 모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