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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789년 프랑스 시민군 바스티유 점거

입력 | 2006-07-14 03:08:00


‘바스티유(Bastille).’

폭정과 구금, 감옥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이 이름은 중세 때만 해도 ‘요새’를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본래 바스티유는 1370년 백년전쟁 때 파리 방위를 위해 프랑스 왕 샤를 5세의 명령으로 파리의 생탕투안 교외에 건설된 요새였다.

바스티유가 감옥으로 사용된 것은 17∼18세기부터. 루이 13세 때 정치가 리슐리외가 감옥으로 개조했다. 1649년 1월 프롱드의 난 때는 파리 시민들이 난입해 일시적으로 시민군이 장악하기도 했다. 루이 14세 이후에는 귀족과 문필가 등 국사범들이 투옥됐다. 이후 바스티유는 전제정치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시인 볼테르와 사상가 디드로 등도 한때 이곳에 구금됐다.

바스티유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1789년 7월 14일 군중 1만여 명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하면서 프랑스혁명이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바스티유에 감금된 죄수는 모두 16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바스티유는 혁명정부의 명령으로 철거됐으나 1880년 바스티유 점거일을 혁명기념일(바스티유 기념일)로 정했다.

바스티유는 많은 예술작품의 대상이자 산실이기도 했다. 화가 숄라의 ‘바스티유 탐닉’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아이언 마스크(철가면)’까지…. 프랑스의 귀족 사드는 이곳에서 12m 길이의 두루마리 종이에 깨알같이 ‘소돔 120일’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100여 년 후인 1989년 7월, 바스티유는 감옥이 아니라 프랑스 국립 오페라 전문극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바스티유 감옥 자리에 문예 진흥을 상징하는 오페라 극장을 세우자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제의에 따른 것.

1984년 착공해 5년여의 공사 끝에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연면적 15만m², 2700석의 메인 홀, 600∼1000석의 부속 홀, 11개의 연습시설을 갖춘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90년 3월 정식 개관일에는 베를리오즈의 5막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이 5시간에 걸쳐 공연됐다. 당시 지휘자는 이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마에스트로 정명훈 씨였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