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8시 열릴 예정이었던 FC 서울-포항 스틸러스의 FA(축구협회)컵 16강전.
축구협회에서 주최하는 공식 경기와 프로축구 K리그는 늦어도 3시간 전에 경기감독관이 경기장 상태와 기상예보 등을 점검해 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다. 이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수원-대전 경기는 오후 4시 15분 이미 취소가 결정됐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오후 5시경 ‘서울-포항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공고했고 FC 서울의 홈페이지에도 공지됐다. 이에 따라 궂은 날씨와 최악의 교통 상황을 뚫고 서울월드컵경기장까지 찾은 100명 이상의 팬은 매표소 입구에서 비를 맞으며 영문도 모른 채 기다려야만 했다.
같은 시간 경기장에서는 축구협회에서 파견한 경기감독관과 양팀 관계자가 줄다리기 협상을 하고 있었다. 경기 취소를 주장하는 FC 서울과 강행을 고수하는 포항 관계자들이 줄다리기를 벌이다 경기 취소가 결정된 것은 킥오프가 겨우 1시간 남은 오후 7시경.
그때서야 구단은 ‘우천 때문에 취소됐다’며 홈페이지 회원에게 단체 문자메시지(SMS)를 보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팬들은 응원도구인 나팔을 불며 항의했지만 구단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FC 서울은 “우리가 축구협회에 미리 연락하려 했지만 접촉이 안 됐다. 경기감독관도 늦게 왔다”고 했고 축구협회는 “무슨 소리냐. 담당직원이 이미 경기장에 나가 있었다. 취소는 FC 서울이 요청한 것”이라며 서로 네 탓을 하기에 바빴다.
이날 기말고사를 마치고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1시간 넘게 걸려 경기장을 찾았다는 FC 서울의 서포터스 김경원(17) 양은 “정말 화가 난다. 내가 왜 이런 팀의 서포터스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팬은 “축구팬을 이렇게 무시하면서 어떻게 프로축구를 보러 오라고 하느냐. K리그는 앞으로 더 망할 것 같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축구협회는 12일 밤 사과문을 띄웠고 비난이 잇따르자 FC 서울은 13일 오전 11시경에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띄웠다.
익명을 요구한 FC 서울의 한 관계자는 “자기 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구단이 이제는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