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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김홍수 리스트’ 파문]“請하면 通한다”

입력 | 2006-07-14 03:08:00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 경찰 등에게 사건 청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홍수 씨가 돈을 건넨 장소와 시간 등을 꼼꼼히 기록해 놓은 2005년 다이어리. 검찰은 최근 이 다이어리를 입수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카펫 수입 판매업체 대표 김홍수(58) 씨의 ‘법조계 인맥 리스트’가 법조계 안팎을 뒤흔들고 있다.

리스트에 오른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검사, 경찰 간부 등이 줄줄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이번 사건은 적지 않은 후폭풍을 몰고 올 듯하다.

사표 제출로 마무리됐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현직 판검사들의 사법 처리 가능성까지 있는 데다 김 씨의 리스트에는 판검사, 경찰 등이 50∼60명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옥중 편지가 단서=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김 씨 관련 첩보를 입수한 것은 올해 3월.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김 씨에게서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을 싸게 매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6억35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이 국회의원 보좌관의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이 편지에는 김 씨가 “지난해 조사 때 모 검사에게 1000만 원을 줬다고 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씨는 당시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1부는 최근 김 씨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 방을 압수 수색해 김 씨가 작성한 진정서, 편지 등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최근 김 씨의 자택, 사무실 등에서 추가로 2005년 1∼7월의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다이어리도 확보했다.

▽‘대가성’ 입증이 관건=2개월여의 검찰 수사를 통해 김 씨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판검사와 경찰 등은 모두 12명. 금융감독원 직원 1명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김 씨에게서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는 향응과 금품을 몇 년에 걸쳐 제공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카펫 수입판매업체를 운영하는 김 씨는 조모 고법 부장판사 등에게는 2000만∼3000만 원의 카펫과 가구도 선물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 씨가 청탁한 사건의 처분 결과를 확인해 봤더니 90%가량은 김 씨의 의도대로 처리된 것 같아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혐의가 입증돼 사법 처리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아직은 김 씨와 관련자들의 ‘진술’ 외에 구체적인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김 씨가 청탁 과정을 전후해 건넨 금품이 대부분 현금으로 전달됐다는 점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받은 금품이나 향응이 사건 청탁 명목이었다는 ‘대가성’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조 부장판사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고 일부 혐의를 인정한 김모 전 검사와 민모 전 경찰서장 등도 “사건 청탁과는 무관하다”고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조 부장판사는 13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나는 혐의가 뭔지도 모른다. 검찰 조사가 끝나면 모든 일이 다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김 씨 등 관련자들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데다 김 씨가 돈을 건넨 일시, 장소, 정황을 꼼꼼히 기록해 둔 다이어리와 장부 등이 있다는 점에서 혐의 입증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검찰은 기대하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