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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방송위원회 출범]대통령 몫 3명마저 ‘코드 맞추기’ 인선

입력 | 2006-07-14 03:09:00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이상희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포함한 위원 9명을 방송위원으로 내정함에 따라 두 달 넘게 미뤄온 3기 방송위원회의 선임 작업이 마무리됐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위원 3명은 이 전 이사장을 비롯해 마권수 전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김동기 변호사이며 국회의장이 원내교섭단체와 협의해 추천하는 방송위원엔 주동황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열린우리당 추천)와 전육 전 중앙방송 사장, 강동순 전 KBS 감사(이상 한나라당 추천)가 확정됐다. 국회 문화관광위가 추천한 방송위원은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한나라당 추천)와 임동훈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장,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이상 열린우리당 추천)가 임명됐다. 임기는 3년. 학계와 언론단체는 이번 위원회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됨으로써 정쟁에 휘말리거나 방송 관련 갈등 사안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해 사실상 ‘식물 위원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3기 위원회는 또 방송통신융합을 둘러싼 구조 개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방송협상 등 숱한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데도 위원회 구성이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정치에 발목 잡히나=3기 위원회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전문성보다 여야 간 ‘자기 사람 심기’를 위해 나눠 먹기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위원회의 균형을 잡아줘야 할 대통령 추천인사마저 전문성이나 시청자 대표성과 무관하게 코드 맞추기식으로 인선이 이뤄진 점은 문제라는 것이다.

9명의 위원이 노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은 뒤 호선을 통해 임명하는 상임위원은 5명이며 이 중 여당과 야당 몫은 각각 3명과 2명이다. 이 중 장관급인 위원장에는 이상희 위원이, 차관급인 부위원장으로는 마권수 최민희 주동황 위원이 거론되고 있다. 야당 추천 인사로는 강동순 전육 위원이 상임위원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상임위원들 사이에서는 선거방송 등 정치적 현안을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방송위 노조는 13일 성명을 내고 “이번 인사는 정치권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과 방송 사업자에 대한 중립성을 상실하게 한 사상 최악의 인사”라며 일부 위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이들이 자진 사퇴할 때까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일 계획이어서 당분간 정상적인 업무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도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방송위원 구성에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비정부기구인 시민단체의 정부기구화”라며 “여당이 추천한 위원 6명 가운데 3명이 민언련 출신이라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 언론학자는 “방송의 산업적 경쟁력이 절실히 필요한데도 정치권이 방송을 정권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어 방송 정책이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방송계를 좌우하는 막강 권한=학계와 시민단체가 방송위의 전문성 결여와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하는 이유는 방송위가 한국 방송을 좌우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하는 방송위는 지난달 22일 임기가 끝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감사의 임명권, KBS 이사의 추천권은 물론 22일 임기가 끝나는 EBS 사장과 이사, 감사 임명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 같은 막강한 인사권을 코드 중심으로 행사할 경우 방송의 독립성과 질적 저하는 불가피하다.

정윤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친여(親與) 인사가 다수를 점하는 방송위는 KBS MBC EBS의 이사 구성과 사장 선임 과정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 공영방송 시스템 자체가 정치적 독립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미디어 시대를 거스르는 지상파 편향 위원회=이번 방송위도 지상파 출신 인물이 다수 포진해 급변하는 뉴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위원 중 5명이 지상파 출신인 데다 사무총장도 지상파 출신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이상희 위원은 KBS 이사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출신이다. 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마 위원도 KBS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방송위 노조는 “지상파에 편향적인 일을 해 온 사람에게 방송 정책에 대한 심판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느냐”며 마 위원의 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이 밖에 임동훈 위원이 목포 MBC 사장과 EBS 부사장 출신이고 강 위원(KBS)과 김 교수(MBC)도 지상파 방송사에 몸담았던 인물. 방송위 사무총장 자리에도 김구동 KBS 재원관리팀 국장이 물망에 오르고 있어 ‘3기 위원회는 지상파 산하 위원회’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3기 위원회는 미디어 융합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위원회가 정파적 이익이나 사업자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성과 소신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