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의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이다. 따지고 보면 전쟁만큼 적나라하게 인간 본성이 드러나는 사태도 없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 자체가 인간과 조직 사회의 본성에 대한 조각들을 보여 준다. 그런 만큼 역사는 전쟁을 읽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본문 중에서》
고대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세력의 각축장이었고, 인접한 중국과 왜(倭) 역시 한반도 내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480여 회의 전투 기록이 나오듯 삼국시대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였던 것이다.
‘전쟁의 발견’은 3세기부터 200여 년간 계속된 왜의 신라 침략, 4세기 백제 근초고왕의 정복 전쟁, 5만의 대병력을 동원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왜 정벌, 신라의 대가야 정복, 백제 멸망 등 삼국시대의 전쟁을 분석하며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 이 책은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 구도가 뚜렷해진다. 한반도 내에서는 백제 근초고왕과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강력한 국가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힘을 발휘한 시기였다. 또 ‘일본서기’에 야마토 왜의 임나일본부와 가야 정벌기록이 나타나는 등 갑자기 왜의 세력이 커진 ‘수수께끼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강자들은 영토를 확장하면서 더 강해지기 위해, 약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유리한 쪽과 손을 잡으며 세력을 키우는 등 그야말로 힘의 논리가 앞서던 시대였다.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역사는 전쟁을 읽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며 “전쟁사 서술이 전쟁의 본질적 요소를 다루는 데 인색했다”고 기존의 역사연구를 비판한다.
전쟁사를 쓰기란 쉽지 않다. 전쟁을 알면 역사를 모르기 십상이고, 역사가는 전쟁이 낯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쟁사 연구는 사료를 피상적으로 번역해 시기별로 연결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사료마저도 구하기 힘든 고대사 연구는 한계가 분명했고, 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무시하고 인물 위주로 역사를 진행해 허구화된 전쟁 영웅이 양산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사료에 남아 있는 한 줄 기록을 붙들고 당시의 국제정세와 전쟁공간에 대한 상황 분석과 실제 활용했을 법한 전략과 전술을 재구성했다. 피상적 분석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국제 정세와 전략 전술, 병력 운용, 군대 심리까지 분석해 당시의 전쟁들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각각의 전투 묘사는 영화처럼 생생하며, 전쟁의 이면에 깔린 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도 이해하기 쉽다. 특히 저자는 유명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속의 전쟁 상황과 고대 전쟁을 비교하는 재치를 발휘하고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고전으로 손꼽히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나 풍부한 실전 경험 및 전쟁의 이론과 역사에 해박한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와 이 책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고대 전쟁의 진면목을 일부나마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박재광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