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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입력 | 2006-07-15 03:00:00

김자동 회장이 서울 중구 태평로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모친이 쓴 ‘장강일기’를 펴 보며 임시정부 초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회장 뒤의 사진은 1930년대 임정이 옮겨가 있던 난징에서 부모님과 함께 찍은 것. 김미옥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78)는 지난달 23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위원회’를 발족하고 기금 모금에 나섰다.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로 임정을 자리 매김한 것에 비하면 기념관 건립을 위한 첫발은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도 다른 단체와 중복된다는 등의 이유로 등록이 지연되다 소송을 거쳐 2004년 9월에야 발족됐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김 회장의 이야기는 임시정부 시절로 돌아갔다.

김 회장의 가족사는 곧 임정의 역사였다. 임정 수립 직후인 1919년 10월 10일 김 회장의 조부 동농 김가진 선생은 맏아들이자 김 회장의 부친인 성암 김의한 선생만을 데리고 상하이(上海) 임정에 망명했다. 동농은 이조 병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한일강제합방 후에는 국내에서 항일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맡기도 했다.

김 회장은 “조부의 합류는 일제가 ‘상하이 임정에는 고관이 없다’며 임정을 낮게 평가하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모친 수당 정정화 여사도 1920년 1월 “친정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와 서울 의주 펑톈(奉天·현재 선양·瀋陽) 톈진(天津) 난징(南京) 등을 거쳐 열흘 만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는 쪼들리며 ‘반거지로 살고 있던’ 임정 사람들의 부엌살림을 도울 뿐만 아니라 임정의 비밀 연락망인 ‘연통제’를 이용해 여러 차례 국내에 잠입하며 독립 자금을 날랐다. 김 회장은 1928년 10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나 김구, 이동녕, 이시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품에서 자랐다.

김 회장 가족은 임정이 상하이에서 항저우(杭州) 난징 창사(長沙) 충칭(重慶) 등으로 옮겨 다닐 때 임정과 한몸처럼 옮겨 다녔다. 2001년 작고한 정 여사는 임정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생생히 기록한 저서 ‘장강일기’(학민사)에서 “등 뒤로 왜놈의 기관총 소리를 들으며 임정의 피난 짐보퉁이를 싸기도 했다”고 적었다.

일제가 패망한 후 미 군정이 임정 요인들의 개인 자격 귀국을 고집해 김 회장 가족은 1946년 5월 9일 상하이에서 난민선을 타고 부산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부친은 6·25전쟁 때인 1950년 8월 어느 날 인민군에 납북된 후 1964년 사망해 평양 용성지구 ‘재북인사 묘역’에 묻혔다.

북간도 무장독립운동 조직인 북로군정서의 고문을 맡기도 했던 조부 동농은 1922년 상하이에서 작고해 상하이 만국공묘에 안장되어 있다. 하지만 ‘서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봉환되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의 부친(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 모친(1982년 건국훈장 애족장)과 달리 동농은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이는 일제가 합방 당시 종 1품 이상의 관리 전원에게 남작 이상의 작위를 내려 공조판서였던 동농이 남작 작위를 받은 전력 때문이다.

“광복 후에도 가족이 한곳에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의 아버지 묘에 참배하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서 평가를 받는 것이 남은 소망이지요.”

담담하게 가족사를 이야기하던 김 회장이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목소리에 탄식과 안타까움, 원망 등이 묻어났다.

기념관 사업은 걱정도 되지만 낙관하고 있다.

“기념사업회 설립이나 기념관 건립 추진이 다소 늦었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우편 안내문만 보냈는데 많은 분이 건립추진위원으로 나서는 등 호응이 좋습니다.”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위원장으로 선출한 기념관 건립 위원회에는 추진위원으로 강신호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김유길 광복군 동지회장 등과 학계 언론계 인사, 여야 의원 등 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은 “후원회를 통한 일반인 모금과 정부 지원 등으로 500억 원가량을 모아 기념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8월에도 대학생을 대상으로 중국 내 임정 유적지와 무장 항쟁 지역을 답사하는 등 임정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추진 중이다. 사업회 02-3210-0411, www.kopogo.com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