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권 말기에 한 실력자는 사석에서 “우리에게 레임덕(권력 누수)이란 건 없다. 떠나는 날까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표출돼 왔다. 어느 정권이든 말기에 접어들면 레임덕 대책과 정권 탄생에 기여한 인사들 챙기기에 신경 쓴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정권 창출 공로자를 임기 내내 한 번도 챙겨 주지 않으면 불만이 누적돼 내부에서 레임덕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실에 이력서가 쌓이고 있다고 한다. 정권의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아 여권(與圈) 인사들이 너도나도 자기 몫을 찾아 먹기 위해 인사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두둑한 연봉에 일하기는 만만한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의 기관장 또는 감사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런 자리는 인사수석실의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청와대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정권 창출 기여도와 충성도, 코드가 인사의 잣대가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의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자면.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말까지 낙하산 인사로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의 임원이 된 사람은 282명에 이른다. 정치인 출신이 134명, 관료 출신이 148명이다. 낙하산을 막는다며 올해 공모(公募)한 92개 기관장 자리 가운데 42개도 여권 정치인과 관료 출신이 채웠다. 기껏 법으로 공모제를 의무화한 취지가 무색하다.
▷낙하산 인사는 전문성 결여에다 특정 코드에 맞춰져 있어 조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해친다. 노조원들은 ‘낙하산’이 내려오면 출근 저지 등으로 반발하지만, 이는 ‘떡’을 더 내놓으라는 신호다. 결국 ‘낙하산’과 기존 조직원들은 국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안길 묘수를 찾아내고 타협한다. 노 대통령은 5월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인사권이 제약되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경영 효율성 향상을 기하겠다”고 했다. 역시 말이 실제보다 그럴듯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