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건 외교를 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고, 국가 발전의 지향점이 되는 분명한 외교 가치를 표방해야 하며, 이러한 두 가지 목표에 관한 국민적 합의와 필요한 외교 자산을 갖추는 일이다. 지금 한국의 외교는 이들 중 어느 것 하나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으며, 방황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국민을 국제적 미아(迷兒)로 전락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안보는 크나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7월 5일 오전 3시 32분, 북한 깃대령에서 스커드미사일의 첫 발사가 이뤄진 뒤 우리 정부는 20분 만에 이러한 사실을 미국으로부터 통보받았다. 만일 그 목표물이 동해가 아니고 청와대였다면 우리 국민은 졸지에 국가의 수뇌부가 증발한 채 영문도 모르고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정부는 우리가 남북대화의 끈을 붙들고 있는 이상, 북한의 대남 도발은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물샐틈없는 대비 태세로 임할 일이지 기대 섞인 희망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북한에 관한 한, 어떻게 해서든 충분한 억지력을 유지하여 돌발 사태에 대비한 뒤 대화외교를 펴는 것이 상식이요, 순리다. 북한의 군사동태를 확실하게 파악할 정보력도, 속전속결의 완승을 거둘 타격 능력도 온전히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지금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의 단독 행사 움직임은 ‘자주국가’의 심리적 포만감을 대가로 한미연합 전력의 견고함을 와해하는 결과를 재촉하고 있다.
독자적 안보 능력이 취약한 상태라면 우방과의 공조체제라도 확고하게 관리하는 것이 상책인데, 한국은 미국 일본과의 기본적인 신뢰관계마저도 해치는 외교를 지속하고 있다. 13일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국회 안보포럼 주최의 강연회에서 한국 정부가 전시상황의 독자적 작전통제를 통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한반도에 군사 충돌 상황이 벌어졌을 때 휴전선 방어에만 목표를 둘지, 아니면 북한 정권을 무너뜨려 통일을 추구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필자도 같은 질문을 정부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에게 누차 제기해 왔으나 분명한 대답을 들은 적이 한번도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통일 청사진에 대한 분명한 합의와 신뢰도 갖추지 못한 채 어떻게 튼튼한 군사공조를 마련할 수 있겠는가. 북한을 압박하면 곤란하다는 입장에 갇혀 자칫 북한 정권을 비호하는 태도로 비칠 만큼 한국의 대북 포용은 맹목적이었다. 최근 일본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태도를 보더라도 말초적 대응의 외교만 난무할 뿐, 한일관계의 비전을 망각한 몰가치 외교가 지배하고 있음을 본다. 갈등 현안을 냉정하게 풀려 하는 외교가 아니라, 일본을 마구잡이로 몰아붙여 국민의 반일정서를 자극하고 북한과 중국의 당국자들만 흐뭇하게 만드는 좌충우돌 식이다.
구멍 난 안보를 안보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접근하려 하고, 기본축이 되어야 할 미일과의 공조를 방기한 채 한국 외교 가치의 기본노선을 의심케 하는 마당에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가 시민사회의 무질서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 반(反)국가세력의 집요한 선동에 국민의 판단력은 흐려져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를 진행하는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시민단체들에 올해도 정부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1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시위가 폭력사태로 변질되고 서울 도심의 교통이 8시간 동안 마비되었는데도 체포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나친 방종은 무책임을 낳는다. 자유민주국가 지도자의 덕목은 소수의견의 표출 기회를 보장하는 일에 앞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나라의 나아갈 길에 대해 확고한 비전과 원칙을 제시하느냐의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북한 정권과의 대화를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는 자들은 순진하거나 교활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우선 나부터 출세하고 보자는 기회주의자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염려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권력 앞에 왜소하기만 하다. 그저 한국 외교의 일탈이 회복 가능한 수준에서 그치길 바랄 뿐이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