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독일의 반도체 원자재 회사인 질트로니크와 합작으로 싱가포르에 세울 공장은 당초엔 국내에 지으려던 것이다. 그런데 질트로니크 측이 “한국에선 자녀 교육이 쉽지 않고 반(反)기업정서도 있어 좋지 않다”며 반대해 싱가포르로 갔다고 한다. 외국인에게 ‘한국도 기업하기 좋다’고 아무리 외쳐 봤자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게다가 싱가포르 정부가 발 벗고 뛰었으니, 한국이 싱가포르에 져 버린 격이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장은 마치 사업가처럼 서비스정신을 발휘해 몇 시간 만에 정부 방침을 정해 주는 등 투자 결정을 쉽게 하도록 유도했다. 값싼 공장 용지와 융자 지원에다 15년간 법인세 면제, 인력 교육을 위한 2700만 달러(약 250억 원)의 보조금 혜택도 줬다. 한국 정부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인센티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싱가포르의 국제경쟁력을 세계 3위로, 한국은 38위로 매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질트로니크는 이미 싱가포르 공장을 가동 중이고 현지 기업 여건이 좋다며 추가 공장도 그곳에 지으려 한다.
이번에 싱가포르에 빼앗긴 투자는 총 4억 달러로 질트로니크 투자분 2억 달러만 따져도 올해 상반기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직접투자액 49억 달러의 4%나 된다. 또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생산 공장이니 환경 문제도 없다. 결국 우리에게 올 수 있었던 ‘질 좋은 일자리’ 800개가 싱가포르로 가 버렸다.
우리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외국 정부 못지않다. 문제는 이를 위한 여건을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고, 주로 말로 때우려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