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1695호)에서 ‘유엔헌장 7장’ 원용을 반대한 이유는 대북 군사행동의 첫걸음이 될 것을 우려해서다. 실제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2003년 3월 시작한 이라크전쟁은 2002년 11월 통과된 안보리 결의안 1441호를 근거로 했다. 당시 결의안 1441호는 ‘안보리는 헌장 7장에 의거해 행동한다’는 점을 분명히 적시해 놓고 있었다.
전문 및 14개항으로 구성된 대이라크 결의안은 1990년 이후 채택된 10여 개 결의안의 결정판이지만, 이번 대북 결의안과는 형식과 등급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대이라크 결의안은 ‘최후통첩’의 성격이 짙다. 이라크는 당시 비밀리에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유엔 무기사찰단을 번번이 추방하는 한편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할 때마다 이를 무시했다.
그 결과 최종 결의안에 군사행동 또는 경제제재를 합법으로 간주하는 헌장 7장 원용 조항이 삽입됐고, ‘안보리는 이렇게 결정한다(decide)’라는 조문이 8차례나 등장한다. 법적 구속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또 ‘(의무조항을 위반하면) 이라크는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는 표현도 포함됐다. 흔히 선전포고로 간주되곤 하는 말이다.
대이라크 결의안의 이런 문구와 비교할 때 대북 결의안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덜 위협적이다. 유엔헌장 7장이 빠졌고, ‘결정’했다는 표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어휘도 없었다. 왕광야(王光亞)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심대한 결과(grave consequence)를 초래할 어떤 견해에도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대북 결의안이 언젠가는 ‘대이라크 결의안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북한도 이라크처럼 안보리의 결의안을 계속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제재를 위한 추가 조치가 예상된다.
워싱턴의 한 외교전문가는 이날 “북한 핵 위기 해결을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인 만큼 이라크 사태와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결의안에 담긴 표현과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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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