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결의안에 대한 투표 강행과 중국의 거부권 행사 움직임→중국의 결의안 제출로 합의 가능성 대두→일본 안(案) 투표 강행 기류로 급변→극적인 합의 후 결의안 만장일치 통과.’
북한이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한 5일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對北) 제재 결의안에 최종 합의한 15일(한국 시간 16일)까지의 ‘안보리 기상도’는 이렇게 시시각각 변해 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한 대응수위를 놓고 그만큼 치열한 탐색전과 고도의 심리전을 벌였다.
▽치열했던 외교전=일본이 처음 대북 결의안을 상정했을 때에만 해도 유엔 주변에서는 최종 결과는 의장성명으로 낙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거부권(veto)을 갖고 있는 중국이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에 대해 난색을 보이면서 의장성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평양 설득 노력이 무산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체면을 구긴 중국이 러시아와 공동으로 결의안을 마련한 것이다. 중국이 형식에서 양보를 한 만큼 이제 일본과 미국이 내용만 일부 양보하면 합의안 도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예측 불가능한 협상 결과=실제로 13일(현지 시간) 밤 협상 실무팀이 최대 쟁점이었던 ‘유엔 헌장 7장 원용’ 조항만 빼놓고 나머지 조항에 대부분 합의하면서 14일 오후 전체회의에서는 합의안 통과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다.
그런데 14일 오전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안보리 회의장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유엔 헌장 7장’에 대해 여전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위기는 또다시 급변했다.
‘협상 실패로 일본 안 투표 강행 가능성’을 점치는 성급한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 그러나 결국 ‘안보리는 유엔 헌장 7장에 따라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는 이른바 ‘7장 원용’ 조항을 ‘안보리는 국제 평화 및 안보의 유지에 대한 특별한 책임 아래에서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는 조항으로 바꾸면서 극적으로 합의가 도출됐다.
▽북한의 결의안 거부 표명 시간은 세계 신기록?=안보리는 15일 표결을 앞두고 남북한이 안보리 이사국이 아니지만 관련 당사 국가인 만큼 의사 표명 기회를 주기 위해 유엔 주재 남북한 대사들의 참석을 요청했다.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이날 결의안 표결과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의 발언 이후 발언을 요청해 결의안을 거부한다는 3쪽짜리 성명서를 낭독한 뒤 곧바로 회의장을 떠났다. 다른 참석자의 발언을 듣지도 않은 채 회의장을 뜨는 것은 유엔 외교의 의전을 깨는 것이다.
그러자 볼턴 대사가 ‘뼈있는 말’을 한마디 했다. 그는 최 대사 발언 이후 발언 기회를 얻어 “오늘은 안보리가 대북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북한 대표가 결의안이 통과된 지 45분도 안 돼 이를 거부하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날”이라고 비꼬았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결의안 주역 美-日 유엔대사▼
‘2인 3각 회견.’
유엔본부에서 대북(對北) 결의안을 취재해 온 기자들은 존 볼턴(58)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오시마 겐조(大島賢三·63) 일본대사의 브리핑을 이렇게 불렀다.
두 사람은 늘 회견장에 나란히 섰다. 오시마 대사는 볼턴 대사를 ‘대사님(Mr. Ambassador)’이라는 존칭 대신 ‘존’이라고 부를 때가 적지 않았다. 볼턴 대사는 “미국의 방침은 방금 일본 측이 설명한 것과 똑같고…한 가지를 부연하자면…”이라는 식으로 말을 꺼낼 때도 많았다.
이번 결의안 처리 과정에서 두 사람의 역할은 단연 돋보였다.
하얀 콧수염으로 잘 알려진 볼턴 대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1기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을 지냈다. 미사일을 실은 북한 선박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면 해상 검문을 통해 막는다는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도입했고, 이 때문에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PSI의 아버지’로 통한다.
오시마 대사는 유엔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직업외교관. 도쿄(東京)대 법대 출신으로 호주 주재 대사를 지냈고 유엔 사무차장(인도적 지원 담당)이던 2002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바 있다. 2004년 11월 이후 유엔 대사를 맡으면서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위 진출이란 특명을 받았다.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 TV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의 모습이 등장했다.
둘의 ‘2인 3각’은 끝내 결의안을 만들어 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