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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대입논술 A∼Z]서론 쓰기 (2)기본을 갖춘 서론…

입력 | 2006-07-18 03:05:00


서론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① what?(무엇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가) ② why?(왜 그것을 쓰고자 하는가) ③ how?(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를 담담히 밝혀주면 된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지요? 학생이 쓴 서론 하나를 예로 들어 살펴봅시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왜 급격히 높아졌는지 분석해 보라’는 요지의 문제에 대하여 쓴 답안의 서론입니다.

“근래에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 가족 동반 자살이나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의 집단자살을 비롯한 각종 자살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자살 증가율이 OECD 가입국 중 1위를 차지했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와도 일치한다. 이러한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기에 그 원인을 집단적이고도 사회학적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습니까, 서론의 기능을 잘 수행한 것 같습니까? 대답은 “예”입니다. 이 정도면 짧은 분량으로도 할 일은 일단 다한 것 같습니다. ①자살률 증가의 이유를 분석할 것이며(what), ②자살 증가율이 OECD 가입국 중 1위일 만큼 심각하기 때문에 분석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고(why), ③개인적 차원이 아닌 집단적, 사회학적 차원에서 접근해 볼 것임을(how) 잘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②부분이 명료하게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맥락상 학생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론을 문제 제기만으로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문제 제기로 나아가기 위한 도입부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입은 단지 도입일 따름입니다. 도입부에 서론의 중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도입에 필요 이상의 고민과 시간을 투여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습니다. 마음껏 멋을 부려 보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지난번에 이미 말했듯이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대입 논술에서 위험스러운 서론의 예를 몇 가지 볼까요? 이런저런 내용을 주절주절 마치 국수를 끝없이 뽑듯이 늘어놓아 첫 단락에서 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국수 공장형’, 할 일을 충실히 할 생각은 아니하고 별 쓸데없고 의미 없는 배경 설명만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무늬만 대하 소설형’, 별것 아닌 평범한 주장에 엄청난 의미를 실어 마치 예언자의 예언 수준이거나 인류 최대의 문제를 다루는 듯 호들갑 떠는 ‘과장 사기형’, 멋진 경구나 쇼킹한 사건, 특이한 예를 통해 시선을 끄는 데 사력을 다하는 ‘쇼맨십 과시형’ 등이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논술의 서론은 멋보다는 기능이 중요합니다.

실제 논술 고사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문제 제기만이 아닌 다른 유용한 기능을 서론에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문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사이버 세계의 유용성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을 정리한 후, 이에 대해 가능한 반론을 제시해 보라.”

이 문제에 대해 서론에서 문제 제기에 주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글을 써야 하는 대입 논술의 경우 한정된 분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서론에서 문제 제기 이상의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제의 경우 글쓴이의 입장을 정리하라는 문제의 첫째 요구사항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과제입니다. 따라서 논의의 대부분을 더 중요한 요구사항인 반론 제시에 투여하기 위하여 서론에서는 첫째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의 입장을 자기 나름대로 잘 요약 정리하는 것을 도입으로 삼고, 이를 기초로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서론에서 첫째 요구사항에 대한 답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문제 제기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제한된 지면을 효과적으로 배분하여 본론에서 심층적인 논의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문제의 요구사항 중 하나를 서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할 일은 다하는 서론이 꼭 필요하지만, 때로는 나중 일도 당겨서 하는 부지런한 서론도 필요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EBS 논술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