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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아, 당-정-청서 경제정책 쥐락펴락

입력 | 2006-07-18 03:05:00


요즘 관가(官街)에는 ‘이피아’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옛 경제기획원(EPB)과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최근 기획원 출신 인사의 득세를 빗댄 말이다.

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을 일컫는 ‘모피아’(재무부의 영문명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처럼 특정 부처 출신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한 경계의 의미도 담겨 있다.

7월 3일 개각으로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당-정-청(黨-政-靑) 삼각 편대’의 주요 포스트가 모두 기획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모두 기획원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이다.

정책감사를 통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전윤철 감사원장은 현직 관료 중 ‘이피아’의 맏형 격이며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강대형 부위원장도 기획원에서 일했다.

18일 권 부총리 공식 취임으로 노무현 정부 후반기를 책임질 새 경제팀이 출범한다. 앞으로 새 경제팀의 정책 결정과정에서 이런 기획원 인맥이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 권오규 부총리, 독자 행보 가능할까

12일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눈은 권 부총리의 인사청문회로 쏠렸다. 첫 번째 질의자로 나선 강봉균 정책위의장과 권 부총리의 질의응답은 이날의 빅 이벤트.

강 의장과 권 부총리는 1993년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에서 각각 실장과 통상조정1과장으로 일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거의 함께 일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다.

강 의장은 이날 따뜻하게 후배를 대하듯 권 부총리에게 경기 부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권 부총리는 “거기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고 맞받아쳤다.

재경부 관계자는 “권 부총리가 독자 행보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둘 사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심전심(以心傳心)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권 부총리가 독자적 행보를 할 수 있을지 관건은 여당과 청와대의 요직에 있는 두 기획원 선배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경제 부처를 넘어서까지 활발한 진출

기획원 출신이 경제라인을 독식한다는 표현은 주요 경제부처의 장차관급 인사를 보면 확연하다.

청와대는 변양균 정책실장을 비롯해 윤대희 경제정책수석비서관, 김대기 경제정책비서관, 정문수 경제보좌관, 노대래 국민경제비서관 모두 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예산과 재정을 관리하는 기획예산처도 장병완 장관과 정해방 재정운용실장, 이창호 재정전략실장 등이 기획원 예산라인의 계보를 이어 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학교수 출신인 권오승 위원장 밑에 실무를 총괄하는 강대형 부위원장이 기획원 라인이다. 기획원과 공정위는 예전부터 인사를 교류해 왔기 때문에 국장급 인사는 대부분 기획원 출신이다.

이 밖에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관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영주 국무조정실장 역시 기획원 라인의 계통을 잇고 있다.

기획원 출신은 비(非)경제부처까지 접수함으로써 활동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예산통으로 분류됐던 김성진 전 기획예산처 사회예산심의관은 중소기업청장을 거쳐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올해 3월 취임했다. 역시 예산라인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던 변재진 전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도 같은 시기에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옮겼다.

변 차관의 복지부 입성 당시에는 “드디어 기획원 라인이 사회부처까지 접수했다”는 말이 관가에서 흘러나왔을 정도다.

한때 각종 요직의 하마평에 올랐던 박봉흠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확고한 기획원 라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기획원 출신 왜 뜨나…‘큰 틀’ 짜는 기획력 뛰어나 각광▼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출신들의 최근 엇갈린 행보는 시대 변화는 물론 그동안 양 라인이 경제 관료로서 다른 역할을 했던 데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부가 금융기관을 사실상 장악하며 관치(官治)를 휘둘렀던 1980년대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당시 재무부 이재국은 금융기관에는 신(神) 같은 존재였다. 은행장이 사무관 앞에서 애걸복걸했을 정도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재무부 출신, 특히 금융라인의 파워는 더 세졌다.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재무부 출신 인사들은 특유의 추진력과 결속력으로 속전속결식 해결사 역할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각종 이권에 노출되었던 점은 최근 검찰 수사 등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대 상황이 바뀌었다.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완료되고 이른바 ‘양극화 해소를 통한 동반성장 전략’이라는 큰 틀을 짜는 데 기획원 출신의 기획력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

특히 기획원 출신들은 한번씩은 예산 라인에서 분야별 예산을 담당하다 보니 어느 부처를 보내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범용성(汎用性)이 장점이다.

하지만 최근 기획원 출신의 지나친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