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고이(대단하다).” “스바라시이(훌륭하다).” “이치방(최고다).”
17일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와 한신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던 오사카 인근 고시엔구장. 억수같이 내린 비로 경기는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센트럴리그 최고 라이벌 팀 간의 대결답게 구장은 50명이 넘는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요미우리의 전 경기를 따라다니는 담당 기자들에게 이승엽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한결같이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승엽은 17일 현재 타율 0.326에 29홈런, 64타점을 기록 중이다. 득점은 70점, 안타는 109개를 치고 있다. 앞으로 홈런 3개만 보태면 한일 프로 통산 400홈런의 고지에도 오른다.
눈에 드러나는 성적도 그렇지만 요미우리 담당 기자들은 이승엽이 4번 타자의 중압을 이겨내고 제 몫을 하고 있다는 데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스포츠호치의 시미즈 유타카 기자는 “이승엽의 활약을 한마디로 하면 바로 ‘고군분투(孤軍奮鬪)’다. 모두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혼자만 제구실을 해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의 시노하라 다이스케 기자도 “6월 이후의 요미우리는 이승엽 혼자 야구를 하는 팀이었다”고 했다.
요즘 요미우리 담당 기자들의 최고 관심사는 그런 이승엽의 진로다. “이승엽이 시즌 후 정말 메이저리그로 가느냐”며 먼저 다가와 역취재를 하는 기자도 있었다.
1년 내내 선수단과 함께 이동하며 선수단 홍보를 책임지고 있는 사카이 모토나리 씨는 “이승엽은 야구선수로서도 대단하지만 인간적으로도 훌륭하다. 여느 일본 선수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선수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은 이날 이승엽을 비롯해 다카하시 요시노부, 아베 신노스케 등 주력 야수는 훈련을 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
이승엽은 오사카의 숙소로 이동해 피로가 누적된 근육에 마사지를 받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오사카=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꿈을 먹고 사는 이승엽
이춘광(63) 씨에게 이승엽(30·요미우리)은 2남 1녀 중 귀여운 막내이자 착한 아들이다. 소문난 효자이기도 하다.
대외적으로도 이승엽은 여린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2003년 시즌 뒤 한국 잔류와 일본 진출을 두고 고민하다가 일본 롯데 입단을 발표한 뒤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선수협 사태가 터졌을 때도 고민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순하게만 생긴 얼굴 한구석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까.
결정적인 순간 이승엽은 항상 고집스러웠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결과는 항상 이승엽이 바라는 대로 됐다.
이승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를 시작했고, 대학에 가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프로에 갔다. 이승엽은 2003년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우며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2003시즌 후에는 한국 잔류를 바라던 이 씨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 진출을 택했다. 첫해 이승엽은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난생처음 2군에도 가보고, 벤치를 지키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이듬해 30홈런을 치더니 올해는 일본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일본 리그 최다 홈런을 기록 중인 이승엽을 두고 벌써부터 메이저리그와 요미우리의 쟁탈전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과연 시즌 후 이승엽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버지 이 씨는 이에 대해 “승엽이는 꿈을 먹고 사는 아이예요. 산 너머 무지개가 있잖아요. 그걸 잡으러 산을 넘어 그 자리에 가 보면 무지개는 또 저쪽에 가 있죠. 승엽이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힘든 길을 택해서 가죠”라고 말했다.
이승엽이 2003시즌 후 삼성의 파격적인 조건을 마다하고 일본으로 간 것이나, 2005시즌 후 연봉이 깎이면서까지 요미우리로 이적한 것 역시 메이저리그행을 위한 준비 단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그 고집이 오늘의 이승엽을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메이저리거 이승엽은 그의 고집의 완결판이 될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