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올해 2월 3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작을 선언한 후 두 차례 공식 협상을 끝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양국 협상단의 대조적 분위기는 확연히 감지된다. ‘자국 업계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미국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반면 한국 협상단의 표정은 복잡 미묘하다. 반대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국론이 분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협상 추진을 결정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통상전문가는 한미 FTA가 한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한미 FTA의 추진 배경과 성공 조건을 2회에 걸쳐 점검해 본다.》
○ 왜 한미 FTA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1월 18일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도 FTA를 맺어야 한다. 조율이 되는 대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한미 FTA 협상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첫 발언이었다. 한미 양국은 보름 후인 2월 3일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전격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한국이 미국과 FTA를 추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이 경제의 70% 이상을 통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과 미국이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한국의 17배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미 FTA에 대해 단순히 시장 확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FTA는 서로 시장을 여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분야에서 손해를 보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 경제는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제조업 위주의 수출지향형 성장전략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중국과 인도 등 경쟁 국가는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시욱 연구위원은 “지식기반 서비스의 육성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에 선(善)순환 구조를 구축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과 전후방 연관 효과가 높은 서비스를 육성해 제조업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다시 서비스업의 수요를 늘리는 구조다.
한미 FTA는 이런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구체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충격’도 기대된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시스템과 한판 붙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 중국 견제와 한미 동맹의 강화
한미 FTA에서 미국도 얻는 게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자동차 의약품 농업 금융 등에서 시장이 늘어난다. 여기에 덧붙여 국제정치적인 전략 목표도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은 군사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대(對)중동 정책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 요르단과 FTA를 맺었다. 9·11테러 이후에는 미국을 적극 지지한 호주와 우선적으로 FTA를 체결했다. 모두 경제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면이 강하다.
미국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중국도 있다. 중국이 2002년 이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 투자대상국으로 떠올랐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2005년 7월 FTA를 발효시키는 등 동아시아 정치 경제가 급속히 중국 중심으로 통합되는 데 대해 미국이 불안감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미 양국이 통상장관회담에서 정부 차원의 FTA 실무검토에 합의한 것도 이 즈음인 2004년 11월이었다.
경희대 유현석(정치학) 교수는 “미국이 한국과 FTA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 중국 주도로 재편되고 있는 동아시아 정치 경제구도를 견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동맹의 강화는 한국 정부도 노리는 효과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 생존전략과 관련해 영감을 얻었다”는 극찬을 덧붙였다.
그의 대선후보 시절 정책팀장 배기찬 씨가 쓴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이 비슷해지는 2020∼2030년 통일을 이루고 아시아의 스위스, 동북아의 균형자로 거듭난다. 그때까지 최대 패권국인 미국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 신뢰를 쌓고 실력을 기르는 게 급선무다.’
○ 한국 정부의 계속된 구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올해 2월 “한미 FTA 협상 출범은 어디까지나 개혁과 개방이라는 정책 방향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미 행정부와 의회, 업계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했다.
일부 반대론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한미 FTA가 미국의 강요 때문에 추진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만 해도 한미 FTA가 이처럼 전격 추진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6월 미국과 FTA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투자협정(BIT) 협상을 시작했다.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가 핵심 경제정책으로 추진되던 때였다. 하지만 협상은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규정) 폐지 등을 둘러싸고 지루한 논란만 지속하다 2000년 5월 중단됐다.
한국은 이후 미국에 여러 차례 재협상을 요청했으나 회답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7일 상황 변화의 신호탄이 오른다.
제13차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미 이때 양국 정상이 한미 FTA 협상 추진에 합의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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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농업 사례로 본 피해 최소화 해법▼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공식 발표한 올해 2월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낙농육우협회 등 8개 농민단체는 “한미 FTA는 농업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선언했다. 정부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한 채 요식적인 절차만 밟고 있다는 주장이다.
FTA를 추진하다 보면 피해를 보는 분야가 반드시 나온다. 이 때문에 FTA의 성공을 위해선 대외적인 협상도 중요하지만 자국 내의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농업 부문은 한미 FTA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풀 것인지가 이번 한미 FTA에서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농민들의 우려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한국 농산물은 가격 경쟁력에서 외국산 농산물에 밀리기 때문에 한미 FTA로 직접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쌀값만 해도 미국산에 비해 4배가량 비싸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한미 FTA 체결로 농업 부문의 생산이 최대 2조283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은 단순히 농업 부문에 돈을 지원하는 것이 효과가 적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국 정부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 대비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농업지원 투융자 등으로 7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지만 국내 농가의 경쟁력은 높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농산물의 브랜드화와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자체 품질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협상을 잘해서 개방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영세 고령 농민에 대해 사회복지 부문의 대책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농촌 인구 중 60세 이상은 60%에 이른다. 개방에 따른 피해는 이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단순히 농업 분야가 아닌 복지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