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가슴 졸이고 바가지에 울고….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강원도를 찾았던 많은 피서객들은 기습 폭우에 가슴을 졸이고 바가지 상술에 울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했다.
15일 시간당 8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원도에서 휴가를 즐기던 피서객들은 오전부터 서울행을 서둘렀다.
하지만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등 서울로 향하는 도로가 모두 통제되자 이들은 강릉으로 모여들었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교통대란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시간이 흐를수록 영동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은 심해졌다. 일부 구간은 500m를 가는데 5시간 이상이 소요되기도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한만길(31ㆍ서울 서대문구) 씨는 고속도로에 서있는 버스 안에서 애를 태웠다. “오전 10시에 강릉을 출발해 20km를 가는데 6시간이 걸렸다. 언제쯤 소통이 원활하게 될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또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발을 동동 구르기는 고속버스 기사들도 마찬가지. 강원여객 소속 한 운전기사는 불안한 승객들에게 “오늘 안으로 서울 가기는 틀린 것 같다. 강릉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피서객과 고속버스 기사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오후 5시에 접어들며 고속도로 중앙분리대가 개방됐다. 되돌아가는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바가지 폭탄에 멍든 추억◇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영동고속도로가 전면 통제된 것은 15일 낮 12시께. 그러나 정부 당국이나 도로공사 관계자들의 공식발표는 없었다. 복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결국 오후 5시가 돼서야 중앙분리대를 개방해 유턴을 유도했다.
귀경을 포기한 차량들은 줄줄이 강릉으로 되돌아왔다. 피서객들은 숙소를 잡고 도로가 복구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놀라고 피곤한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숙소가 아니라 천재(天災)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는 바가지 상술이었다.
가족과 함께 경포대를 찾았던 이상태(45·서울 은평구) 씨는 “어제(14일)는 4만 원이던 방이 오늘은 8만 원을 달라고 한다. 어떻게 하루 사이에 2배로 뛸 수 있냐”며 분노했다.
연휴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여행 온 박명희(27·서울 강남구) 씨도 “폭우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해 다시 왔는데, 이런 천재지변을 이용해 바가지를 씌우는 게 말이 되냐”며 악덕상술을 성토했다.
피서객을 울리기는 음식점도 매 한가지. 메뉴판에 나와 있는 大(대), 中(중), 小(소) 중 小자 음식은 아예 없어졌다며 中자 이상을 시킬 것을 강요한 것.
민훈기(47·경기 수원시) 씨는 “재해를 이용해 메뉴판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느냐.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할망정 돈을 더 내놓으라니, 아무리 장사꾼이라지만 어처구니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는 이날 오후 늦게 경포대 인근 숙박업소를 찾았다. 하루 묵는 데 얼마냐는 물음에 “바다가 보이는 방은 8만 원, 그렇지 않은 방은 6만 원”이라고 했다. 다른 숙박업소를 찾았더니 로비에서 손님과 주인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1분전에 5만 원이던 방이 지금은 7만 원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피서객의 항의에 주인은 “방이 나갔다. 7만 원 이상짜리 방밖에 없다”며 다른 곳으로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한술 더 뜨는 곳도 있었다. 한 숙박업소 주인은 “홍수가 났어도 주말은 주말이다. 우리는 7~8만 원을 받지만 휴가철 주말에는 보통 10만 원 이상 받는 게 불문율이다”며 오히려 숙박료가 싸다고 강변했다.
경포대 인근의 ㅁ횟집 사장은 “방 하나에 평일에는 6만 원, 주말에는 8만 원, 심하게는 그 이상을 내야 하는 곳도 있다”며 “강릉의 숙박료는 그 날의 피서객수와 주인의 마음에 따라 정해진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강릉시청 관계자는 “숙박료는 업소에서 자율로 정한다. 시청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휴가철의 바가지 요금은 업소가 알아서 받는 것이고, 그 피해는 모르겠다는 식이다.
이날 집중호우로 강릉에 발이 묶인 피서객들은 폭우에 가슴 졸이고 바가지상술에 울분을 삭여야 했다.
강릉 =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