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중국의 취푸(曲阜)는 10년 전에 비해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하고 있다. 취푸는 공자를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 종손들이 대대로 살아 온 공부(孔府), 공자와 그 아들 공리(孔鯉), 손자로 중용(中庸)을 저술한 자사(子思) 등 공자 76대손까지의 묘가 있는 공림(孔林)이 중심 유적이다.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의 묘도 여기에 있다. 과거엔 논밭과 벌판이던 곳에 넓은 도로가 나고 호텔과 상가, 공자사상을 재현하는 문화공간 교육공간이 들어서고 있다. 중국답게 스케일이 큰 야외공연장에선 공자를 다시 불러내 공자사상의 핵이 인(仁)과 의(義)이고 세계대동(世界大同)이니 ‘21세기에는 중국이 세계평화의 종주국이자 모든 문화의 중심’이라는 메시지를 관람객에게 전하고 있다. 1년에 내외국인 수백만 명이 찾아드니 관광 수입도 엄청나다.
마오쩌둥(毛澤東)이 1974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정적 린뱌오(林彪)를 제거하기 위해 ‘비공비림(批孔批林)’, 즉 공자도 린뱌오도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 노선에는 적이라고 낙인찍고, ‘문화혁명’이라는 이름하에 철없는 아이들을 홍위병으로 내세워 공자의 유적이라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부수어 대던 때와 비교하면 이 역시 상전벽해다.
사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공묘와 공림에 제사를 올렸고, 1950년 10월에는 중국인민해방군총사령관이던 주더(朱德)가 미국과 싸우기 위해 6·25전쟁 때 중공군을 동원한다고 공자묘에서 제사를 지냈다.
마오쩌둥도 1952년 공묘에 들렀고, 55년에는 중국사회주의는 공자의 경서에서 나온다고까지 했다. 해마다 중국공산당의 주요 인물이 모두 여기를 참배했다. 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도 1965년 참배했다.
시장경제로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면서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은 국민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개방되면서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이념 수정과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 정립이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력을 확보한 시민들은 더욱 자유를 구가할 것이고, 뼛속까지도 자본주의적인 중국인에게 사회주의가 더는 먹혀들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은 다시 국민통합과 새로운 사회문화의 주도력을 공자사상에서 찾고자 하고, 나아가 중국이 전 인류의 정신적 가치세계와 세계문화의 종주국이 된다는 논리를 만세사표(萬世師表) 공자에게서 새롭게 해석해 내고자 한다. 그래서 취푸는 동양, 더 나아가 세계의 성지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중국이 공자를 내팽개치고 발로 짓밟고 있을 때 공자사상을 현창하고 발전시킨 것은 한국이다. 다만 문제는 이 영역 전문가들의 역량이 모자라 공자사상을 주자학의 테두리에서 탈출시키지 못하고 시대에 적합하게 새롭게 해석해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점이다. 이 틈새를 보고 문화혁명기의 논리를 국내에 유포하거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거나, 공자를 내세워 지식장사로 돈을 번 날쌘 사람들도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제도론에만 매몰되어 나랏일을 할 사람의 자세와 도리, 자격을 논의하는 담론이 사라져 버린 점이다. 이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벌고 권력만 잡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가치전도(顚倒)가 발생했고, 정치판에서는 무력을 동원하든, 패거리를 동원하든, 국민을 선동하든 권력만 잡으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 돈 챙기고 권력을 나눠 갖는 ‘해먹자 공화국’의 오류를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공사(公私) 구별과 지도자론(제왕학·帝王學)에 대한 담론이 사라지고 나라의 공적인 일을 적나라한 권력 투쟁으로만 본 데서 빚어진 것이다.
공자사상을 이(理)니, 기(氣)니, 성(誠)이니, 중(中)이니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어렵게 이해하지 않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예의염치(禮義廉恥)’만 알아도,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알고, 능력도 없이 마구잡이로 국가를 운영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알며, 민심이 천심인 줄 알아 저 혼자 날뛰지 않는다.
여행도 좋고 관광도 좋지만 중국이 공자를 다시 살려 내는 의미맥락을 진지하게 음미해 보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성찰해 볼 일이다.
정종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jschong@snu.ac.kr